2024.05.18 (토)

  • 맑음동두천 21.3℃
  • 맑음강릉 28.1℃
  • 맑음서울 22.4℃
  • 맑음대전 23.9℃
  • 맑음대구 26.7℃
  • 맑음울산 24.4℃
  • 맑음광주 24.7℃
  • 맑음부산 20.2℃
  • 맑음고창 ℃
  • 맑음제주 21.3℃
  • 맑음강화 18.6℃
  • 맑음보은 24.0℃
  • 맑음금산 23.3℃
  • 맑음강진군 21.8℃
  • 맑음경주시 25.5℃
  • 맑음거제 20.7℃
기상청 제공

임철중 칼럼

종군위안부와 성노예 3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50>

 

   1945년 패전국 일본에 미군이 상륙하기 직전, 황궁 앞에서 ‘특수위안시설협회’ 창립대회가 열렸다.  전쟁이 끝나 ‘귀향한 군인’들이 “미군이 오면 여자들을 남김없이 겁탈할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려, 이를 미리 막자는 명분으로 내무상의 지시 하에 1억 엔을 지원하여, 매춘조직을 만들었다.  스스로 동아시아 점령지에서 저지른 만행이 있으니까, 개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귀축(鬼畜) 미군들은 오죽하랴, 지레 겁을 먹고 만든 정부 주도 매춘 업이 1년 동안 계속되었다고 한다.  이런 마인드니까 점령국 처녀들을 성노예로 부려먹고도 “죄의식이나 반성이 없는 것”이다. 

1955년 단편소설 “태양의 계절”로 젊은이들의 우상이 된 이시하라 신타로는 뒤에 도쿄도지사를 지낸 극우 중 극우요, 여성비하의 극치를 보여준 인물이다.  “여성이 생식능력을 잃고 살아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백세 이상 산 쌍둥이 할머니 긴상 자매처럼 오래 사는 것은 지구의 큰 폐해다.”라고 말했다.  예과 때 읽은 ‘태양의 계절’에서 남은 기억은 주인공이 처음 만난 여학생 젖가슴을 쿡 찔러보는 무례함뿐이다.   작가의 일생을 관통한 안하무인이다. 문체만은 간결하고 박력이 있었는데, 잃어버린 세대의 대표작가 헤밍웨이의 일본식 아류(亞流)라는 것, 그 뿐이었다.

 

   제1부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일본의 ‘일부’ 학자나 작가의 특징이 있다.  첫째, 학문도 소설처럼 유창하게 말로만 잘하는 개론(槪論) 전문가가 많다. 둘째, 어떤 현상에 가나다 순서를 매기고 Stereotype화하는 선수다.  학문의 교통정리나, 문제집 만들기에 적임자다.  셋째, 이시하라처럼 아류 되기, 즉 모방은 가히 천재 수준이되, 독창적인 사고와는 거리가 있다.  일상생활에도 남다른 특징이 있다.  의견을 말할 때 “예-아니요” 가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  하는 말(建前)과 속내(本音)가 다르다는 것이다.  한자(漢字)에 의존하다보니 읽는 방법도 소리로 읽기(音讀)와 뜻으로 읽기(訓讀)가 다른 것은 좋은데, 이것이 고유명사까지 적용된다. 

안중근의사가 처단한 초대총리 이토와 현 문화과학상 시모무라의 이름은 같은 박문(博文)인데, 전자는 ‘히로부미’요 후자는 ‘하쿠분’이다.  독창성 결핍에 이중적인 관습이 DNA에 박혀있다면 그 근본원인은 무엇일까?  역사적으로 민초들은 칼 쥔 자 밑에 엎드려 살고, 사무라이는 영주에게 무조건 복종하며 걸핏하면 제 배를 갈랐으며, 영주는 막강한 막부의 눈치 살피기에 성패(成敗)를 걸었다.  굴종과 연기(演技)를 ‘생존의 슬기’로 받아들이고, 태풍과 지진과 쓰나미에서 체념을 익혔다.  흑선(黑船) 덕분으로 서양문물을 접한 좋은 기회에, 메이지유신은 현대화·민주화가 아니라, 전제군주에 군국주의를 덧칠한 퇴행을 택하면서,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역주행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패배는 제2의 기회였으나, 전승국 미국의 맹목적인 관대함과 냉전의 시작이 맞물려, 일본은 혹독한 징벌을 면하고 오히려 경제에는 대박을 만났다.
 민주사회의 발전이라는 면에서 보면 이 대박은 일말의 저주를 감추고 있었다. 

 

   변(糞)은 치워야지 덮을수록 악취만 진동한다.  12세 폭행소년의 엄마처럼, 워싱턴 정가 로비와 개발도상국 원조라는 뇌물로 어물쩍 넘어가려는 수법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고향에만 돌아가면 된다.”는 낡은 일본 속담으로 퇴영(退嬰)하는 일이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에 편승하여 무임승차하려는 과거사의 반복은 결국 국제적인 ‘왕따’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양심 있는 지성인들이 일어나 ‘증오 심리’에 사로잡힌 일부 극단주의자들을 꾸짖어 바로잡는 것이,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선린과 평화와 번영의 길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 글처럼 두 나라가 피차 치부를 파고드는 일 자체가, 계속 오리발만 내미는 극단주의자들이 자초한 결과 아닌가?

 


 

 

글: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