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0 (월)

  • 흐림동두천 17.0℃
  • 흐림강릉 15.0℃
  • 흐림서울 18.5℃
  • 흐림대전 15.2℃
  • 맑음대구 20.1℃
  • 맑음울산 20.7℃
  • 구름많음광주 17.7℃
  • 맑음부산 22.0℃
  • 구름많음고창 ℃
  • 구름조금제주 21.5℃
  • 흐림강화 16.8℃
  • 흐림보은 14.4℃
  • 구름조금금산 14.9℃
  • 맑음강진군 17.4℃
  • 구름조금경주시 19.4℃
  • 맑음거제 19.8℃
기상청 제공

임철중 칼럼

명량의 감동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44>

 

   발틱함대를 격파한 도고제독은(1905. 5. 27), 자신이 (영국의 넬슨이라면 모르되) 이순신제독과 동렬(同列)에 설 수 없는 이유 세 가지를 말했다.  첫째 일본 연합함대는 러시아 발틱 함대보다 규모가 컸다(충무공은 항상 열세).  둘째, 육군의 연전연승으로 일본 해군기지는 안전했다(조선 수군기지는 위협을 받거나 보급이 끊겼다).

 셋째, 일본은 천황에서 병사까지 단결하여 성원했으나, 충무공은 모함과 고문에 시달렸다.  모두 옳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당시 전함은 석탄을 때니까 배 무게의 1/3은 연료와 물이었다.  일본이 패전하면 영국은 꾸어준 차관 원금까지 떼일 판이요, 미국 프랑스 네덜란드 모두 러시아의 남진을 견제하고 있었다.  사실상 적성 국가들이 제해권을 쥐고 있는 먼 항로를 돌아오려면 엄청난 연료가 필요하고, 그만큼 식량·식수·탄약을 줄여야한다.  전투해역(대한해협)에 도착했을 때 발틱 함대는 이미 중환자였다.  함정 38척 중 21척 격침, 수병 5천명 전사에 6천명 포로, 순양함 한 척과 구축함 두 척만 블라디보스토크항까지 도주한 것도 기적에 가깝다.

 일본은 어뢰정 3척 손실에 사상자 700명이었다.  이에 앞서 뤼순항 해전의 승리도 비밀리에 기습한 덕분이요, 육군의 영웅 노기 대장의 203고지 전투도, 항복한 러시아보다 사상자가 3배나 많은 괴상한 승리였다.  일본 극우세력이 자랑하는 일제 황금기의 내막은 대부분 이런 것들이다.
    
   해남 땅 끝 마을의 명소는 두륜산 고계봉 전망대다.  다도해가 한눈에 들어오고 360도 사방이 모두 절경이다.  케이블카에서 흘러나오는 외국인을 위한 영어안내가 귀에 거슬린다.  이순신 장군을 ‘제너럴 리’란다.  해군 제독은 Admiral이지 General이 아니다.  4백여 년 전에도 통제사라는 직급이 있었는데, 아직도 장군과 제독을 구분하지 못하는 관행도 바로잡아야 한다.  이런 작은 잘못이 축적되어 세월호가 침몰한다.  The Devil is in Detail(the tail).  영화 “명량”이 신기록을 세우고 있지만, 완성도에서 “졸작”이라는 진중권 교수의 의견에 동의한다.  첫째는 CG다.  아무리 큰 배도 항해할 때에는 작은 흔들림(roll & pitch)이 있어, 스케이트 타듯 미끌어져 가지는 않는다.  부자연스러운 선박의 항진은 불합격이다.  둘째, 백병전에는 생사를 건 무기의 절박한 부딪침이 있다.  적어도 몇 개의 클로즈업만이라도 확실한 안무가 필요한데, 눈을 부릅뜨고 봐도 정확한 동작을 짐작하기 어렵고, 대부분 blurring처럼 지나간다.  영화의 완성도 역시 디테일에 있다.  수출하기에는 좀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량에서 몇 번씩 가슴 뭉클한 감정이입을 느끼는 까닭은?    첫째는 충무공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매력이다.  수적 열세와 반대파의 음해에도 불구하고 23전 전승을 거두고, 따르는 백성들을 보호하며, 그  난리 중에도 성실하게 세계전쟁사에 드문 기록을 남겼다.  둘째, 타이밍이 예술이다.  아베의 뻔뻔한 과거사 부정과 독도 영유권 주장과 군국주의 부활의 조짐은, 전통적인 우호국 미국의 무언의 지지를 받고, 아시아의 평화와 한반도의 안위를 위협한다.  세월호의 비극은 부끄러운 부패와 무능의 결정판으로, 경제도 활력을 잃었고, 온 국민이 무력감으로부터 자긍심을 되살려 줄 리더십을 갈망하고 있다.  아베와 세월호의 더블 펀치에 때맞춰 나온 명량이, 이러한 국민감정을 승화시키고, 하나로 뭉칠 계기를 제공한 것이다.  셋째 무엇보다 김한민 감독의 공이 크다.  “본질”에 충실하기 위하여 명량 하나의 전투에, 디테일보다는 충무공의 정신과 활약에, 다소 어색하지만 필름의 절반을 해전에, 집중하는 문법이다.  스스로 역량에 맞춰 과욕을 자제하고 젊은 관객까지 사로잡은 선택과 집중 그리고 진정성의 성공이다.  넷째, 이에 부응하는 최민식의 무게가 상승효과를 가져왔다.  게리·올드맨을 연상케 하는 언더플레이의 바탕에 돌발적인 감정의 폭발은, 고뇌하는 리더 역할을 긴장감 있게 표현해냈다. 

 그 결과로 평범할 수도 있는 어록 하나하나가 어눌한 경구(語訥·警句)처럼 가슴을 때리는, 그래서 한국영화사상 최고 기록을 갈아 치우는, 대작을 탄생시킨 것이다.

 때때로 명작과 베스트셀러는 동행하지 않는다(don't go together).

 

 


 

 

 

 

 

 글: 임철중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졸업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조교수

대전광역시 치과의사회 회장

대전`충남 치과의사 신용협동조합 창설 및 이사장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대한치과의사협회 치과의료문화상 수상

대한치과의사협회 공로대상 수상

대한치과교정학회 부회장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

대전문화예술의전당 후원회 창립 및 회장

대전방송 TJB 시청자위원

대전광역시 문화재단 이사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