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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나만 옳을까? 1 : 과거사 청산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43>

 

   역사에 가정법(假定法: if)은 “죽은 자식 무엇 만지기”라고 한다.  그러나 70년이 넘도록 “친일”의 잣대에만 매달리는 어리석음을 극복하려면 한 번 짚고 넘어가보자.

 국권을 넘겨준 1910년, 대한제국에는 일제와 일전을 불사할 의지도, 그만한 상비군도 없었다.   분에 못 이겨 자결하거나 지방에서 산발적인 저항에 그쳤고, 뜻있는 지사들은 망명을 택하였다.  윌슨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선언”에 고무된 “3·1독립선언”을 계기로 자리가 잡힌 임시정부와 국제사회에서 독립을 호소한 이승만박사 등 선구자들, 이 쌍두마차 덕분에 일제 패망 이후에 독립을 약속받았다. 

만약 일제에 병탄당할 당시에 백성들이 세상 형편에 눈을 뜨고, 일제의 압제가 싫어 인구의 1/3쯤이 만주로 이주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열 명의 빈자리는 열다섯의 일본인이 채웠을 것이다.  제국주의가 침략·점령한 땅에 자국민을 이주시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니까.   국가는 개인보다 더욱 게걸스럽고, 제국주의는 탐욕의 덩어리다. 

그래서 제국주의 시대의 국제분쟁해결은 기정사실(fait accompli)과 현상유지(status quo)가 우선이요, 지금도 크게 달라진바 없다.  그러므로 인구분포가 높고 유효하게 지배하고 있으면 과거로 되돌리기가 어렵다.  일제치하에 이등국민으로서 짓밟히면서도 견디고 내 땅을 지켜 낸 민초들이 애국자인 이유다.

 

   이(異)민족 타(他)종교가 공존하며 고생하는 나라가 많다.  북아일랜드의 얼스터, 옛 유고슬라비아 6개국, 중국의 신장성이 있고 팔레스타인은 강제 원상회복(?)의 후유증을 앓는다.  그렇다고 이천 넌 전 조상대대로 살던 땅에서 쫓겨난 유대인들의 탓도 아니다. 

미당의 “이런 나라를 아시나요?”라는 시를 보자.  “전당쯤은 잡혀도/ 절대로 아주 팔지는 않는 나라/ 냉수와 쌀과 김치만으로/ 만년은 누구나 기다릴 수 있는 나라” 

이토록 우리민족의 오기와 겨레의 참을성을 기리고 북돋아준 시인을, 아끼던 제자가 앞장서서 친일로 매도하는,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패륜도 있었다. 

 

   아직도 친일청산을 앞세우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첫째, 친일세력에 업혀(?) 집권한 이승만이 6·25 남침 당시 서울을 지킨다고 속이고 달아났으며, 9·28 수복 후 3개월간 적치 하에서 시달린 서울시민들에게, 부역(공산군에 협력)을 가려낸다면서 이중으로 고통을 주었다고 비난한다.  그 140배가 넘는 35년 남짓한 세월을 일제하에 먹고살며 자식을 가르친 부모는 어떠했겠는가?  선생이 되거나 고시에 합격하고 출세를 했다하여, 부역자라고 욕하며 무조건 돌을 던질 수 있는가? 

둘째, 나치 부역자를 철저히 응징한 프랑스를 부러워한다.  영·미의 도움과 독일의 내란 덕분에 제1차 세계대전을 끝낸 프랑스는, 독일이 경제적으로 회복할 수 없도록 살인적 배상금을 물리고 가혹한 무장금지 조항을 강요하며, 국경에 난공불락의 요새 “마지노선”을 구축하였다.  그렇게 얕보던 독일의 전차군단이 마지노선을 우회, 침공하자 40여일 만에 항복하였다(1940. 6. 22).  영토 2/3를 내주고 자투리땅에 들어선 비시정부는 실로 초라하였다.  제2차 대전의 승리는 역시 연합군 덕분이었다.  사상자수는; 독일 815만, 미국 121만에 비해 프랑스는 64만, 반대로 포로는 각각 185만, 14만에 프랑스가 180만이다.  전사자는 영국보다도 적다(27만 대 20만).  자랑할 수 없는 통계다. 

레지스탕스 외에는 4년여 전쟁 내내 열외(列外) 된 무력감·자괴감이, 나치협력자에 대한 비이성적인 분노와 폭력으로 투사된 것은 아닐까?  독일병사와 동거한 여인을 삭발, 시내에 조리 돌린 일은 그냥 린치(私刑)다.  국가가 보호하지 못한 비전투원의 생존 형 부역을 매도하는 것은, 항거불능의 약자를 짓밟는 원초적 잔인함이요, 과거청산보다는 분노조절에 실패한 ”분풀이“에 가깝지 않은가?

 


 

 

 

 

 

 글: 임철중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졸업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조교수

대전광역시 치과의사회 회장

대전`충남 치과의사 신용협동조합 창설 및 이사장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대한치과의사협회 치과의료문화상 수상

대한치과의사협회 공로대상 수상

대한치과교정학회 부회장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

대전문화예술의전당 후원회 창립 및 회장

대전방송 TJB 시청자위원

대전광역시 문화재단 이사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