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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조상 탓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34>

 

   재미동포들이 모금을 해서 뉴욕타임스에 전면광고를 냈다고 한다(5월 11일 자).
 전 국민이 애도하는 “세월호의 비극”을 들어, “진실을 밝혀라.  왜 한국인들은 박대통령에게 분노하는가?” 이어서, “3백 명 이상이 배안에 갇혔는데 한명도 구조되지 못한 구조작업은 (0 rescued), 정부의 무능과 태만을 보여주었다”라며 꾸짖고 있다. 

 타이틀은 “진실규명(Bring the truth to light)”이었다.  진실을 규명하려면 사고회사인 청해진해운의 실질적인 사주(主)요 경영책임자인 유병언 회장의 진술부터 받는 것이 순서다.  또 지난 4월 25일부터 백악관사이트에 올려 서명을 받고 있다는 “구원파와 청해진 주주에 대한 수사중단 촉구” 청원을 광고주들이 몰랐을 리가 없다. 

 생전에 김정일이 이 신문에 자화자찬 광고를 실어 만인의 웃음을 샀던 일이 있다.

 진실을 밝히라는 “애국자”들이 정작 위에 말한 청원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반박이 없으니, 필자가 기가 막혀 한참을 웃다가, 문득 김정일 광고가 생각난 것이다. 

 

 태평양전쟁 중 무수한 전함이 격침당하면서, 바다로 뛰어든 사람을 인접 호위함이 구조하는 노하우가 축적되었다.  그러나 시속 6노트의 조류, 가시거리 30Cm의 탁한 물속에서, 90도 이상 기울어진 8천 톤의 배 안으로 잠수사가 진입하는 작업을 상상해보라.  갇혀버린 인명을 한 사람도 구하지 못한 것은 물론 억장이 무너지지만, 빤히 보면서도 지척이 천리로 속수무책인, 불가항력의 상황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포크랜드 전투가 마치 비디오게임처럼 중계되었고, 엑조세 미사일에 맞은 구축함 선실에서 카메라에 잡힌, 1,000도가 넘는 열에 일그러지던 병사의 모습도 그러하였다.  부상과 쇼크, 저체온증과 탈진으로 구조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큰 배가 침몰하는 순간 소용돌이에 휘말리면, 사람은 물론 작은 배까지 함께 빨려 들어간다.  

 그러므로 바다에 흩어진 사람의 인명구조는 매우 위험하고 시간이 걸리는 고난도 작업이다.  그런데 “172 rescued”가 아니라 “0” 라니.  물론 재난 시 응급 매뉴얼도 연습도 준비가 안 된 해경과 구조인력에 대한 비난은 아무리 심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재빨리 “Abandon Ship!"을 방송하고 승객들의 탈출을 돕기는커녕 저들만 빠져나온 ”악마들“에게서 나 자신의 이기적인 그림자를 보고, 자기비하 내지 자괴감(自愧)으로 한없는 ”집단 우울증“에 빠진 전 국민의 죄의식... 

 엄청난 재앙을 만나면 인간은 미지의 절대자에 대한 두려움과 동시에 자신의 무력함에 대한 분노를 경험한다. 절대자의 자비를 구하고 자신의 분노를 투사할 속죄양(scapegoat)의 역사는 인류와 함께 해왔다.  하늘이 무너지는 친상을 당하면 마지막까지 모셨던 애꿎은 올케가 도마에 오르고, 국가적 재난에는 최고 통치자에게 무한책임을 뒤집어씌운다.

 

 “안되면 조상 탓!”은 또 다른 형태의 책임회피요, 평소 대통령이름을 개 부르듯 개 무시했던 사람일수록 더 열을 올린다.  이 기회에 범국민적 치유와 개조 보다는, 반대하는 세력을 압박하자는 의지가 앞선 것은 아닌가?  58,000달러 모금목표에 5달러, 10달러씩 소액기부가 많고 4천여 명이 참여하여 목표의 세배를 넘겼다고 한다. 

 대부분은 두고 온 고국에 대한 순수한 애국심의 발로(發露)일 것이다.  그러나 글 내용을 보면 “그것 봐, 오죽하면 내가 이민을 왔겠어?  아직 한국은 한참 더 고생을  해야 돼.”하는 자기합리화 심리도 일부 엿보이고, 교포신문이 아닌 NYT를 택한 데에는 혹시, “미국정부가 박근혜 정권을 좀 압박해 달라.”는 북쪽 지지나 사대(事大)적인 냄새는 없을까?  만약 그렇다면 이는 누워 침 뱉기로 기네스북에 오를 일이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광고는 광고일 뿐 로비도 캠페인도 아니며, 광고주(主)는 신문사 광고국에서만, 그것도 거래상의 VIP일뿐, 큰 의미를 부여할 이유는 없다. 

 다만, “내 탓이요!”를 입에 달고 사셨던 고 김수환 추기경님이 새삼 그리워진다.

 

 

 

 

 

 

 

 

글: 임철중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졸업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조교수

대전광역시 치과의사회 회장

대전`충남 치과의사 신용협동조합 창설 및 이사장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대한치과의사협회 치과의료문화상 수상

대한치과의사협회 공로대상 수상

대한치과교정학회 부회장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

대전문화예술의전당 후원회 창립 및 회장

대전방송 TJB 시청자위원

대전광역시 문화재단 이사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