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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드러난 민낯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20>

 

옹기장사가 언덕길에 지게를 받쳐놓고 쉬면서 백일몽을 꾼다.  “이걸 팔아 돼지 서너 마리를 사면 몇 달 뒤에는 서른 마리, 소를 몇 마리 사서 다시 삼년이 지나면 논이 두어 마지기...”  신이 나서 부지중에 지게작대기를 걷어찬다.  와르르 소리에 놀라 눈을 뜨니, 꿈은 훨훨 날아가고 사금파리 한 무더기만 남다. 이른바 ‘옹기 셈’이다.  “노름판 통박은 부자간에도 안 맞는다.”고 한다.  흔히 노름꾼은 끗발이 올라 주머니가 두둑할 때를 본전으로 생각하는 ‘노름판 셈법’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놀면서 목돈을 손에 쥔다는 요행심리와 더불어 도박중독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그래서 여성편력은 참아도 노름꾼 남편은 일찌감치 포기하란다.  적극적인 세일즈에 힘입어 이제는 국제화 되었지만, 전통적으로 날 생선을 상식하는 민족이 일본인이다.  옹기 셈과 노름꾼의 본전과 날로 먹기, 이 세 이야기를 조합하면, 아베총리와 아소 장관 등 일본 극우파의 민낯(속셈)이 드러난다. 

 

일본은 청일전쟁으로 청나라에서 조선에 대한 주도권과 대만 및 요동반도를 뺏는다(1895; 요동은 반환).  노일전쟁에서는 러시아로부터 남만철도와 사할린 섬 이남을 빼앗는다(1905; 포츠머스조약).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미국은 필리핀, 일본은 조선을 사이좋게 나눠 갖는다(1905).  1904년 불평등조약 한일의정서를 체결하고, 이듬해에 독도를 시마네 현에 귀속 시킨다.  대한제국 강제 합병(1910).  1931년 노구교사건을 조작하고 만주를 점령하여 괴뢰정부를 세운다.  군부는 이누가이수상을 암살(1932)하고 자유정치인 셋을 살해(1936)한 뒤, 의회·내각의 제지를 천황의 이름으로 억누르고 대동아공영권을 선언, 중국과 전쟁을 확대하여 광동까지 점령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영국과 동맹하여, 독일의 산동반도 지분과 마샬·카롤리나·마리아나 제도를 날로 먹는다.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당하자, 이번에는 불령 인도지나를 거저먹어 미국과 긴장이 고조된다.  중국과 인도지나에서 물러나라는 ABCD 경제봉쇄에 추가로 미국 내 일본재산이 동결된다.  일본은 1936년에 시작한 나치·파시스트(Germany & Italy)와 동맹을 강화하고(樞軸國), 도조가 수상에 취임하여 전쟁준비를 끝낸다.  진주만 기습 이후 동서로 미드웨이 인근에서 버마(미얀마)까지, 남북으로는 만주에서 과달카날까지 일본제국의 판도는 팽창한다.  도박꾼의 허세와 눈치작전이 먹혀들어 끗발이 최고로 오른 짧고 짜릿했던 절정기요, 일부 극우파들의 자랑스러운 역사이며, “노름꾼 식 본전”이다.  전쟁 전 영토의 일부까지 선선히 떼어준 독일과, 노름판에서 슬그머니 날로 먹은 독도를 내어놓으라는 일본...

대사관 무관경력으로 미국의 잠재력을 꿰뚫어 본 야마모도 제독은 대미전쟁을 반대했다.  반세기를 전쟁으로 지새온 빚(外債)과 ABCD 경제봉쇄로 자원마저 고갈, 전쟁만이 탈출구라는 육군의 압력으로 진주만 공격계획을 세우지만, 성공해도 제해권은 6개월뿐임을 강조한다.  “그 동안 목표한 자원국가들만 점령해버리면, 겁 많은 미국시민이 남의 나라 찾아주겠다고 목숨을 걸겠느냐?” 또는 “유럽전선에서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승승장구하니 걱정 없다.” 가 군부의 배짱이었다.  꼭 6개월 후 미드웨이 참패로 제독의 예언은 실현되고, 일본은 미군의 전의 상실을 목표로 참혹한 자살특공대와 옥쇄로 맞서지만, 물량공세의 쓰나미 앞에 4년을 못 버티고 항복한다. 


 

일본에 대한 미국의 전후처리에는 세 가지 가닥이 깔려있다.  첫째, 패전국 독일을 짓밟은 프랑스의 1차 대전 뒤처리는, 제2차 대전을 자초하여 실패했다는 생각이다.

둘째, 전쟁 중에는 연합국이었지만, 동유럽을 선점, 공산화하고, 원폭투하 직후 만주를 일주일 만에 무혈통과, 평양에 진주한 스탈린은 믿을 수 없는 음흉한 상대다. 

셋째, 가쓰라·태프트 밀약 등, 일본은 개국 이래 전통적인 미국의 우호국이었다.   

결국 전통과 문화를 존중한다는 구실로 선전포고 최고책임자인 천황은 전범에서 빠지고, 2천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전쟁 책임자로 사형당한 A급 전범은 단 일곱 명이었다.  일본은 공산주의팽창 저지선으로서 죄의식을 세탁하고, 전후복구는 물론 본전에 개평까지 챙겨, 세계 제2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한다.  일등 공신은 물론 6·25 남침을 저지른 김일성이었다.  결론적으로, 원폭투하의 죄책감까지 작동하여 징벌은 경징계로 처리되었고, 아시아 각국은 지금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 먼저 나간 “헌법을 얕보는 나라들”에서 오키나와 전투의 미군 전사자 숫자를 12,500명으로 정정함.  이 글 ‘드러난 민낯’은 한일 간 우호관계의 회복을 기원하는 심정에서 역사와 정치적 배경을 정리해 본 다섯 편 중 넷째임.  

  

 

 글: 임철중

<?XML:NAMESPACE PREFIX = O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졸업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조교수

대전광역시 치과의사회 회장

대전`충남 치과의사 신용협동조합 창설 및 이사장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대한치과의사협회 치과의료문화상 수상

대한치과의사협회 공로대상 수상

대한치과교정학회 부회장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

대전문화예술의전당 후원회 창립 및 회장

대전방송 TJB 시청자위원

대전광역시 문화재단 이사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