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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추리문학관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⑯

 

 

추리소설하면 사건해결을 위한 ‘deduction', 즉 범인잡기 두뇌게임(who-dun-it)으로 국한되는 의미가 있으나, 사실은 애드가 앨런 포의 공포·심리소설(psychic- horror)부터 20세기 냉전의 산물인 스파이 소설(cloak & dagger)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데, 끝까지 결말이 궁금하다는 넓은 의미에서 ’mystery' 장르로 분류한다.

 

1990년대 초 월간 임상의학에 연재한 치과인의 영화감상에서, 영화로 본 3대 스파이 소설을 소개한 적이 있다. 죤 르 카레(John Le Carre)추운나라에서 온 스파이”, 렌 데이튼의 국제 첩보국(Ipcress File)” 그리고 프레데릭 포사이즈의 오뎃사 파일이 그것으로, 지금까지도 이들을 능가하는 작품을 만난 적이 없다.

 

커피향이 그윽한 북 까페, 열 명 이쪽저쪽이 모여앉아 음악과 영화를 즐기는 홈시어터, 재즈가 흐르고 홈 바(Bar)에 싱싱한 레몬이 항상 준비된 집필실. 이는 필자만의 로망이 아닐 터인 데, 나이 50에 이 꿈을 성취한 진짜 행복한 사나이가 있다.

 

치과의사문인회(치문회) 5차 문학기행에서 만난 여명의 눈동자의 작가 김성종. 연대를 나와 기자를 거쳐 전업 작가, 그것도 한국에서는 희귀동물이던 추리소설가로 대박을 친 경력은 잘 알려진 팩트. 분명 내 또래인데 이마에 드리운 엷은 그늘이 나이 읽기를 가로막는다.

 

실례지만 몇 학번?” “64학번, 그렇지만 41년생이요.” 묻지도 않은 답을 덧붙인다. 학번은 3년 아래인데 나이는 두 살 위, 그늘의 미스터리가 조금 풀린다. 중국 제남 시에서 태어나 고향 구례에서 성장, 여수가 보이는 산비탈 난민촌에서 여섯째를 낳은 영양실조의 어머니가 36세 나이로, 곧 이어 간난동생마저 세상을 뜬 것이 작가가 13세 때. 이제야 연륜이 제대로 읽힌다. 일제의 수탈, 해방 후 혼란에 이어 김일성의 남침을 겪은 세대에게 웬만한 초년고생은 기본이지만, 조금 더 남다른 시련의 혹독함이 훗날 추리작가로 대성하는 내공을 길러준 게 아닐까. 바닥에 음모(intrigue)와 복선(underplot)을 깔고 스릴과 서스펜스로 서서히 독자의 궁금증을 달군 뒤, 극적인 반전으로 허를 찌르는 추리소설은, 치밀한 구성과 끈기 있는 서술이 핵심이니까. 성공한 작가가 전 재산을 던져 한적한 해운대 언덕에 추리문학관을 지은 것이 1992. 1층은 차 마시며 책을 읽는 북 까페, 2, 3층은 고 김내성씨의 사상의 장미같은 희귀본과 세계적인 작가의 사진·기념품을 모아놓은 자료실, 4층은 강의실, 5층은 널널한 책상 두개에 두 다리 뻗고 낮잠을 즐길 긴 의자까지 갖춘 집필실, 글쟁이에게는 한 마디로 꿈의 낙원이다.

 

김 작가의 강의 주제는 비틀거리는 문학”. 자타가 인정하는 우리 독서문화를 한탄하고, 창작의 샘을 살려줄 정부시책을 아쉬워한다. 몇 년 전 통계로 한국 작가의 월수입이 평균 이십만 원에 불과하다니, 북한·중국의 국회의원 대우, 5만여 도서관에서 신간을 한 권씩 사주는 일본의 출판계와 좋은 비교가 된다. 작가 황석영을 격분케 한 사재기 사건은 언급하지 않았는데, 그가 약속대로 프로방스에서 사는 줄 알았던 필자는 갑작스런 기자회견에 놀란 바 있다. 강의의 하이라이트는 런던의 죤 르 카레 사인회 이야기. 사인회 책값은 정가의 절반이요, 두 시간 줄을 서서 사인을 받는데, 뒤에 선 킹콩 같은 보디가드가 두 명, 너무나 부러웠다고 한다.

언어는 민족의 혼()이요, 이를 기르고 가꾸는 이가 문인이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역경을 헤치고 노력 끝에 한 장르의 거장으로 우뚝 선 성공인생의 조용한 말 한마디 마다 설득력이 차고 넘친다. 강의가 끝난 후 1층에 내려온 일행이 한두 권씩 책을 사서 사인을 받는데, 물론(?) 반액은 아니다. 전 세계의 수많은 문학관·미술관·박물관 중에 흑자 내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요, 방문객이 얻어가는 감동과 지적 만족감이야말로 진정한 흑자가 아닌가. , 여러 권을 사면(구매가 아니라 후원이다) 서글서글한 아줌마가 끝전은 떼어준다. 전국에 단 하나인 장르 문학관, 몇 번이라도 다시 찾고 싶은 문화체험이요 작가와의 대화였다.

 

 

 

 

 

 

 

 

 

글: 임철중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졸업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조교수

대전광역시 치과의사회 회장

대전`충남 치과의사 신용협동조합 창설 및 이사장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대한치과의사협회 치과의료문화상 수상

대한치과의사협회 공로대상 수상

대한치과교정학회 부회장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

대전문화예술의전당 후원회 창립 및 회장

대전방송 TJB 시청자위원

대전광역시 문화재단 이사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