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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누웠다가, 기어코 일어서는 끈기

[詩가 있는 풍경 32] 하종오 시인의 ‘질경이’


질경이는 밟혀서 자란다

먼지 이는 길가에서는 먼지를 잠재울 줄 알며

자갈 하나에 깔려서도

질경이는 대지의 힘을 얻는다

밟히면 밟히면 눕고 눕고

잠시 누웠다가 기어코 일어나는 끈기

콱콱 밟힐수록 밟힐수록

뿌리뻗어내는 뿌리뻗어내는 뚝심

질경이는 잎을 포개고 벌레를 쉬게 하지만

잎만으로 뜬세상을 살지 않는다

우리가 맨몸으로 살아가며

가꾸는 어린 목숨도

쓰러지고 일어날 때 튼튼해지는 기쁨

봄 아침에 풋풋하게 질겨지는 질경이


[끈기]

1월1일자 신문엔 신춘문예 당선작들이 발표됩니다. 시와 소설과 희곡 그리고 동화, 동시에 평론까지.. 그 인고의 얼굴들이 모처럼 새날처럼 환하게 웃는 사진이 신문마다 대문짝만하게 실립니다. 설명을 보지 않고 얼굴과 장르를 매치시켜 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시인은 대개 표가 납니다. 이 사람이 시 부문 당선자겠거니 싶으면 거의 틀림이 없습니다. 시인의 얼굴은 그만큼 음영이 깊습니다. 몇 줄 시어 속에 갇혀 눕고 눕고, 잠시 누웠다가 기어코 일어서긴 하지만, 그들은 질경이처럼 풋풋하게 질겨지지는 못하나 봅니다.

J일보의 심사평엔 이런 지적이 있습니다.

-신춘문예 투고 시를 읽으면 가슴이 뛴다. 한국 현대시의 오늘과 내일을 파악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그러나 기대는 곧 실망으로 변한다. 마치 아이돌 가수들이 현란한 춤 동작을 앞세우다 정작 노래의 본질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신춘문예 투고 시 또한 추상적이고 몽환적인 언어의 춤이 지나치게 현란해 시의 본질을 잃고 있어 안타깝다.-

대체 뭐가 몽환이고 뭐가 본질이란 것인지.. 요령부득의 심사평과는 달리  당선소감은 분명 자신을 덧씌운 짙은 음영을 힘차게 걷어내고 있었습니다.

-한때 스스로와 타자 사이를 화해시키려 애썼음을 고백합니다. 그 불화를 다독이다 시를 알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시를 보이고 들었던 악평들에 감사합니다.-

아래는 J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돌의 문서’(이린아 作) 중에서 발췌.


돌은 그래

인간이 아직 맡지 못하는 숨이 있다면 그건 돌의 숨이야. 오래된 공중을 비상하는 기억이 있는 돌은 날아오르려 점화를 꿈꾼다는 것을 알고 있어.

돌은 바람을 몸에 새기고 물의 흐름도 몸에 새기고 움푹한 곳을 만들어 구름의 척후가 되기도 해. 덜어내는 일을 일러 부스러기라고 해. 하찮고 심심한 것들에게 세상 전부의 색을 섞어 딱딱하게 말려 놓았어. 아무 무게도 나가지 않는 저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 것도 사실은 인간이 쌓은 저 딱딱한 돌의 축대들 때문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