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는 늘 같은 방식으로 내리지만, 듣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스며든다. 어떤 날의 비는 배경이 되고, 어떤 날의 비는 기억을 끌어올리는 장치가 된다. Uriah Heep의 'Rain'은 후자에 가깝다. 내리는 비를 그저 바라보는 게 아니라, 그 비를 통해 스스로의 상황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가사는 여백이 많은 수묵화 같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rain’이라는 단어, 그리고 그 비를 맞으며 서 있는 화자. 묘하게도 이런 단순함이 오히려 가슴을 깊게 파고든다. '비를 맞고 있다'는 건, 피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고,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상태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곡은 궂이 슬픔을 설명하지 않는다. 누구든 그냥 그 자리에 서 있게 할 뿐이다.
피아노 위에 얹히는 보컬 역시 비교적 건조하다. 울음을 참는 사람처럼 좀채 감정선을 터뜨리지 않는데, 그런 절제가 오히려 슬픔을 더 크게 느끼게 한다. 때문에 'It’s raining'의 반복은 어떤 선언이기보다 체념에 가깝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것 같은, 그래서 이 구절은 더욱 쓸쓸한 읊조림이 된다.
그림을 한번 그려보자. 우산도 없이 비를 맞고 서 있는 사람. 굳이 피하지도,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맞지도 않는 애매한 상황. 어쩌면 우리는 이미 그런 무중력의 순간을 몇차례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냥 그 자리에 머물러야 했던 그런 시간을...
그래서 Rain은 위로의 노래라기보다, 동행의 음율에 가깝다. 감정을 끌어올려주지도 해결해주지도 않지만, 대신 그 아픔이 지나갈 때까지 가만히 옆에 있어준다. 마침내 비가 그치면 옅은 안개도 함께 걷히듯, 음악은 그렇게 끝이난다.
모처럼 봄비가 내린다. 선거도, 전쟁도, 주식도.., 굳이 기분을 끌어올릴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조금은 젖은 채 잠시 틈을 보여도 괜찮다면, 이런 날은 그냥 볼륨만 조금 올려줘도 좋을 듯 싶다.
Uriah Heep의 5집 'The Magician's Birthday'에 수록된 곡, David Byron이 보컬을 맡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