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6 (목)

  • 맑음동두천 18.2℃
  • 구름많음강릉 13.7℃
  • 맑음서울 18.2℃
  • 맑음대전 18.8℃
  • 맑음대구 19.0℃
  • 맑음울산 19.0℃
  • 맑음광주 20.5℃
  • 구름조금부산 20.8℃
  • 맑음고창 ℃
  • 맑음제주 20.5℃
  • 맑음강화 17.0℃
  • 맑음보은 17.8℃
  • 맑음금산 18.1℃
  • 맑음강진군 21.9℃
  • 맑음경주시 19.3℃
  • 맑음거제 20.8℃
기상청 제공

조성완 칼럼

지레짐작 에이즈 공포증

[조성완의 고개숙인 남자]-⑤

너무나 추웠던 1월의 어느 날 진료실에 들어온 환자 때문에 깜짝 놀란 적이 있다. 20대 후반 170cm전후의 젊은 남성이 누나인듯한 여성에 이끌려 왔는데, 퀭하게 번쩍이는 두 눈만 보이는 너무나 삐쩍 말라 흐느적거리는 체격 때문에 놀란 것이다. 반듯한 이목구비에 헐렁해 보이는 양복에는 근처의 잘 나가는 대기업 배지가 달려있어 무척 똑똑한 직장인처럼 보였지만, 너무 말라 광대뼈만 보이는 얼굴이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난민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제 동생이 심각한 고민이 있어 왔어요. 67kg 나가던 멀쩡하던 애가 3개월 만에 22kg이나 줄어서 이제 45kg밖에 안나가요.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길래 하도 걱정이 되서 어젯밤 끈질기게 캐물었더니 황당한 말을 하더라고요. 저도 잘 몰라서 데려왔으니 잘 부탁합니다.”

걱정하는 누나의 간단한 얘기를 듣고 단둘이 마주앉아 차근차근 들은 이야기를 정리해 보면, 3개월 전 직장에서 세 명이 중국으로 출장을 가서 이틀간 중요한 업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기분 좋게 회식을 갔다가 너무 취해 정신을 잃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옆에 술집 아가씨와 옷을 벗은 채로 있더란다. 아가씨에게 떠듬거리며 물어보니 일행 중 선배 하나가 만취된 후배 하나 총각딱지 떼어준다고 아가씨와 함께 보냈고, 정신없는 상태에서 콘돔을 철저하게 쓰고 안전하게 성관계를 가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평소 너무나 깔끔하고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사생활 관리가 철저했던지라 콘돔을 제대로 사용했다고 해도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는데다가, 일정이 빡빡하고 무리했는지 귀국하고 2-3일간 가벼운 몸살증상이 있었는데 인터넷을 뒤져보니 에이즈 증상과 너무 비슷하더란다. 그 후로는 밤에 잠도 안 오고 입맛도 없고, 병원을 찾아 상담하려다가도 에이즈 판정이 나면 국가기관에서 나와 집이나 직장으로부터 격리되고, 사회적으로 완전히 매장당하는 상상만 떠오르더란다. 주변에 문란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은데 왜 하필 깨끗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왔는지 원망도 하고 심지어 자살을 결심하기도 했다는 말에서 얼마나 고민했는지 실감이 났다.

 

글로벌 시대에 성장하는 경제에 맞춰 해외출장이 많아지면서 비슷한 사례들이 점점 늘고, 국내에서도 과거에 비해 에이즈 환자가 늘었다는 보고를 매스컴으로 보면서, ‘에이즈 공포증으로 고민하는 환자가 나날이 늘고 있다. 의학이 나날이 발전하여 치료약이 있음에도 다른 세균 감염질환의 간단한 항생제 치료와 다른 바이러스 질환이고, 국내 성매매에 법적 제재가 생기면서 상대적으로 기회가 많은 동남아나 중국 등에서 성관계를 갖는 일이 늘어나서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남들에게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고민이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해지는 점도 많아 보인다.

특히 많이들 사용하는 인터넷 검색을 뒤져보면, 막상 감염의 가능성 정도에는 정확한 통계가 거의 없다보니 드물게’, ‘가끔’, ‘간혹등과 같이 애매한 표현으로 기술되어 있으면서, 증상이나 후유증에 대해서만 자세히 기술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확률의 개념 없이 접근하는 일반인들에겐 오해의 소지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에이즈와 같이 전형적인 증상보다 매우 다양한 양상을 보이는 질환에서는 정확한 지식 없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오인될 수 있는 증상만 가지고 혼자 고민하는 것은 금기다. 더 많은 의학지식과 경험을 가진 의사에게 모든 증상을 털어놓고, 진찰과 적절한 검사를 통해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감기약과 같은 간단한 치료는 아니더라도 과거와 달리 병의 진행을 막는 치료약제들이 있으니, 절대 혼자서 동굴 속에 숨어 고민하지 말고 전문의에게 도움을 요청하시기 바란다.

그리고 의사가 검사를 통해 정상이라고 판정을 내리면 100% 그 말을 믿고 고민을 벗어 버려야 한다. 간혹 의사의 말도 못 믿고 이 병원 저 병원을 돌아다니며 수 십 번이나 검사를 반복하는 환자가 있는데, 본인의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이 역시 쉽게 해결될 수가 없다.

21세기가 되어도 마음의 병을 고치기는 쉽지 않으며, 전문가의 도움과 본인의 의지가 중요하다. 병원을 찾아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지 않으면 의사가 집집마다 찾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글: 조성완

이윤수조성완 비뇨기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