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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쓰기는 열정같은 것.. 다음엔 장편 도전하고파"

PEN문학상 소설부문 본상 수상한 신덕재 원장

 

지난 11일 중소기업중앙회 그랜드홀에서 열린 PEN문학상 시상식에는 낯익은 치과의사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소설부문에서 본상을 수상하는 신덕재 원장(중앙치과)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34회째인 이번 PEN문학상 본상 수상자는 시, 소설, 수필, 아동문학, 평론 해서 모두 여섯명이었다. 신 원장은 최근 펴낸 소설집 '바보 죽음'으로 등단 24년만에 한국에서 가장 전통있는 문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게 됐다. 
시상에 앞서 심사를 맡은 백시종 작가는 신 원장의 작품들이 '고단한 삶을 사는 소외계층의 아픔과 고뇌를 지나칠 정도로 고집스런 사실주의 기법으로 다루고 있다'고 평했다. '소설의 뼈대인 서사 구조가 탄탄해 가독력이 높은 데다 유행에 부응하지 않고 자기 스타일을 올곧게 지키고 있는 점 역시 문학적 성취를 더하게 한다'는 것.
그러나 작품만 좋다고 상을 받게 되는 건 아니다. 국제PEN한국본부 손해일 회장의 말마따나 3천명이 넘는 회원들 중 한해 겨우 10명 정도만 선택되다 보니 이른바 '운칠기삼'이 아니고선 평생 박수만 치다 마는 작가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만큼 신 원장도 수상소감에서 흥처럼 솟구치는 내면의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왠 말이냐. 내 딸이면 어디 보자. 어디 내 딸 좀 보자. 아이고! 내가 눈이 있어야 내 딸을 보제. 아이고 답답하여라. 두 눈을 끔적끔적 끔적끔적 끔적 하더니 눈을 번쩍 떴구나." 이렇게 심청전의 한 구절을 읊은 다음 그는 'PEN문학상은 힘들고 고된 문학 생활 속에서 심 봉사처럼 눈을 번쩍 뜨게 한 중요한 이정표'라고 고백했다. 

수상 작품집인 소설집 '바보 죽음'엔 모두 6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이 가운데 신 원장이 가장 애착을 갖는 작품 역시 단편 '바보 죽음'. 이 소설은 칠쟁이 구 씨가 송전탑 작업 도중 감전돼 심한 화상을 입고 죽음에 이르는 4일간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스토리가 워낙 탄탄해 약간은 투박해 보이는 서술 형식이 오히려 독자들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이 소설은 평론가들로부터 '현세와 죽음의 간격을 잘 그려냈다'는 평을 받았다.

 


또 하나, 중편 '죽음에 이르는 일기장' 역시 '75세 되는 해 봄, 나는 죽을 것이다' 라는 예언으로 시작해 6년 뒤인 75세 되는 해 봄, 루게릭병으로 주인공이 죽기까지의 과정을 1인칭 일기 형식으로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이 특히 관심을 끄는 건 작중 인물들을 실제 치과계 인물로 쉽게 유추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인데, 이 부분에 대해 신 원장은 '어디까지나 사실을 토대로 한 허구일 뿐이며, 소설을 열린치과봉사회와 연계해 읽는 건 배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열치를 모르는 독자들은 그저 한 사람이 죽어가는 과정 쯤으로 줄거리를 이해하게 된다'는 게 그의 설명.   
이 '죽음에 이르는 일기장'은 신 원장이 작심을 하고 써낸 작품이다. 지난 봄부터 여름까지 그는 일요일마다 아무도 없는 치과에 나와 열심히 자료를 모으고, 컴퓨터 자판을 두들겼다. 일요일 약속은 일절 잡지 않았고, 시간 배정의 1순위였던 하나원 봉사마저 장기간 빠졌다. 소설쓰기가 아니고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신 원장의 창작욕은 오래 전부터 그의 내면에 터를 잡았다. 중학생 시절 뜻도 모르면서 읽어 내려간 실낙원, 삼국지 같은 고전에 빠져 '나도 소설을 쓰고 싶다'는 욕구를 갖게 된 것이다. 물론 실제 소설을 쓰게 된 건 이보다 훨씬 후의 일이지만, 어쨌든 그는 1995년 첫소설 '땅과 바다의 어름'을 계간 포스트 모던에 투고해 신인상을 받았다. '어름'이란 접점을 의미하므로 땅과 바다의 어름은 곧 갯벌을 가르킨다. 그는 이 작품에서 6.25 이후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서민들의 실상을 그렸다.


"PEN문학상도 타셨는데, 이젠 뭘 쓰고 싶으세요?"
신 원장은 겸연쩍은 웃음 끝에 '심청전을 테마로 장편소설을 한번 써 볼까 구상 중'이라고 말을 이었다. 한다면 하고 마는 그의 성품에 비춰 내년 연말쯤이면 두툼한 장편소설 한 권을 우리 앞에 슬쩍 내밀지도 모른다.
신 원장은 PEN문학상에 이어 14일에는 북한이탈주민 지원을 통해 국가 사회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대통령표창을, 17일에는 수필집 '세월을 거슬러 간 여행'으로 순수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