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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무·정책

보톡스 이겼지만 '레이저''스플린트' 아직 진행 중

치과계 '단합의 힘' 다시 한번 발휘해야

대법원의 보톡스 판결 이후 의료계의 양대축인 의협과 치협의 분위기도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승소확률이 6%에 불과하다는 '막판 뒤집기'에 성공한 치협은 표정관리에 애를 쓰는 반면, 의협은 연일 거친 구호들을 쏟아내고 있다.

의협 범의료계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추무진)는 최근 가진 상임이사회에서 '치과의사 보톡스 시술 관련 판결로 의료영역에 타 면허권자의 침탈이 확전일로에 있다'고 선포하고, '의료법 개정 추진 등 사회적 공론화를 위한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을 논의했다. 이번 결과를 '과학적 근거도 없이 의료영역이 침범 당한 경우'로 본 것.

따라서 원격의료나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문제와 관련, 더욱 적극적으로 대국민 홍보에 나서는 한편 '내부 의식화 및 조직화를 통해 유사시 강력한 투쟁으로 즉각 돌입할 수 있는 로드맵과 투쟁방안을 갖추자'는 것이 이날 논의의 핵심이었다.

 

 

치협도 지난 27일 압구정동 한일관에서 보톡스 판결의 과정을 설명하는 기자간담회를 가졌지만, 전투적인 의협과는 달리 '가능한 한 이 일로 의사들을 자극하지 말자'는 다짐부터 재확인 했다. 이날 최남섭 협회장은 '이번 판결로 치과의사의 위상이 한단계 높아졌다'며, 학생때부터 공부해온 것들을 이제야 인정받게 된 점, 국민들이 의료인에는 치과의사도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게 된 점, 치과에서 보톡스 시술도 한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진 점 등을 소득으로 꼽았다.

치과진료영역 수호 비상대책위원위 김종열 위원장은 '기대 이상의 성과', '승소 이상의 판결', '전화위복' 등의 수사를 아끼지 않으면서도 '오남용이 없도록 자체정화의 노력이 따라야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직역을 떠난 협진’을 강조했다. 

이강운 법제이사는 그동안의 경과를 설명하면서 '자료의 힘'을 특히 강조했다. 검찰청이든, 보건복지부든, 대법원이든 막힐 때마다 세계 각국에서 수집한 관련 자료들을 들이밀어 길을 텄다는 것.

전국 100군데 이상의 치과가 고발당한 2011년 당시엔 치대병원과 학회들로부터 교육 관련 자료를 수집해 증거자료로 제출함으로써 대부분의 경우에서 불기소처분을 받아냈고, 상고 이후엔 각 치과대학으로부터 수집한 턱얼굴 미용 목적의 보톡스 필러 시술 교과과정과 미국, 일본, 호주 치과의사협회로부터 회신받은 치과의사 진료영역에 관한 자료들을 대법원에 제출했다. 또 의료분쟁의 위험성이 크다는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중재원, 소비자원, 현대해상에 의뢰해 '치과에서 발생한 보톡스 관련 분쟁이 거의 없다'(2년에 1건)는 현황자료를 제출하기도 했다.

공개변론 때 치과의사측 참고인을 맡은 이부규 교수도 '이번 판결은 치과의사에게 사실상 안면 부위의 모든 시술을 허용하는 판결'이라고 정의하고, 그럼에도 '보톡스를 의료법으로 규제하기는 쉽지 않지만, 치과의사가 사고를 내면 사회적 평판은 금새 달라질 수 있다'며, ‘앞으로는 우리가 잘 해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비대위에서 홍보를 담당한 최영준 교수(중앙대병원 구강악안면외과)는 '치협과 학회가 긴밀히 협조해 좋은 보수교육으로 질관리를 해줘야 보톡스 시술이 확산될 수 있다'면서, Q&A를 만들어 홈페이지에 공지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이번 성과에서 확인된 또 하나의 긍정 요소는 바로 '단합의 힘'이다. 초기엔 이강운 법제이사가 이 사건을 전담해 혼자 동분서주했지만,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대법원 상고를 결정하고 부터는 협회와 대학 그리고 학회가 똘똘뭉쳐 역할을 분담하고 비용도 마련했다. 특히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된 4월 이후엔 위원들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대법원 공개변론 준비에 들어가 국내외 자료들을 정리하고 논리를 개발하는데 밤샘작업도 마다 않았다.

법률자문을 국내 최대 로펌 김&장에 맡길 수 있었던 것도 학회와 일부 지부 그리고 관련 학과 교수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9,440만원의 성금 덕분이었다. 예산 한푼 없이 시작한 싸움이었지만 승소를 하고도 오히려 약간의 자금을 남길 수 있었던 것.

이번 사례는 위기 앞에서 '집행부가 잘못 한다'고 깍아내리기만 할 게 아니라 팔을 걷고 나서서 나부터 힘을 보태는 자세가 전체 치과계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치협은 이번에 큰 활약을 보인 치과 진료영역 수호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상설 대책위로 재구성해 계속 운영하기로 했다. 진료영역의 문제는 보톡스 뿐만아니라 ‘레이저’ ‘스플린트’ 등에서도 이미 진행중인데다 직역간 영역다툼이 첨예화할수록 진료권을 수호해 내기 위한 헌신적인 노력들이 더욱 필요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대법원의 판결 결과가 TV뉴스와 일간지를 통해 알려지면서 보톡스에 대한 환자들의 관심도 부쩍 높아졌다. 교정이나 보철 후 자연스런 안모를 위해 보톡스를 권하는 자체도 이전보다 훨씬 설득력을 갖게 됐다.
치협은 이같은 수요를 보수교육에도 적극 반영할 계획이다. 구강악안면외과학회 등 관련 학회들과 협력해 동영상을 통한 모바일 교육을 도입한다는 것. 최남섭 협회장은 이와 관련 ‘회원들이 보다 쉽게, 효과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교육방법을 연구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