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훨씬 전에 수원으로 이사를 왔으니 수원 사람이 된지도 벌써 근 오십 년 가까이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 살고 있는 동네는 수원 인근이긴 하지만, 초중‧고를 수원에서 나왔고 또 치과도 개업 이래 수원을 떠난 적이 없으니 오리지널 수원 사람이라고 우겨도 누가 뭐라 그럴 사람은 없습니다. 심지어 제가 지금 사는 용인의 유명 인사나 정치인들은 하나도 모르지만, 수원을 배경으로 정치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미주알고주알 뒷담화도 가능할 정도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5~6학년 때 수원 인구가 대략 12만 정도였는데, 이는 전국 10대 도시에 간신히 들까말까 할 정도였으며 목포, 전주와 엇비슷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그 때보다 무려 열 배나 커졌습니다. 땅덩어리까지 커졌으면 좋으련만 인구만 늘었으니 변두리는 죄다 아파트 단지로 들어찼고 중심가는 사람들로 복작복작합니다. 인근 화성시와 오산을 수원과 통합한다면야 금상첨화겠지만, 지역 공무원들의 이기주의와 토호 세력들의 각종 이권이 개입된 문제인지라 지지부진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속칭 이중 언어(Bilingual)를 구사했습니다. 그러니까 집에서는 경상도 사투리를, 학교에서는 표준말을 썼던 것이죠. 그러나 그 표준말이라는 것도 따져보면 수원, 화성 지역의 사투리였습니다.
수원이면 수도권이고 서울과 매우 근접한 지역인데 사투리라고 하니 많이 당황하셨죠? 그러나 실제 수원 사투리가 있습니다. 가령 '~ 했거든'을 '~했걸랑'이라고 한다든지, '~그런거야?' 같은 경우도 '~그런거? 저런거?'처럼 줄여서 표현합니다. 심지어 '망혀!'라는 표현은 '좋지 않다', '나쁘다'의 의미입니다. 광교산을 굉겨산이라 부르고 팔달산을 팔딱산이라 부르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시 '사뎅이'라는 요리를 아십니까? 이 말도 수원화성 지역의 사투리입니다. 쉽게 풀이하면 돼지뼈우거지탕이랄 수 있는데, 이를 서울에서는 감자탕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뎅이에는 돼지의 각종 뼈가 들어가지만, 감자탕에는 돼지 등뼈가 주를 이룹니다. 결국 사뎅이와 감자탕은 형제이기도 하고 동의어로도 쓰입니다.
문헌을 찾아보니 원래 전라도 지역에서 돼지뼈를 이용한 요리가 발달했는데, 전쟁 이후 인천 지역으로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리다보니 자연스레 인천 음식으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서울 응암동을 중심으로 하는 감자탕 동네가 형성되었고, 급기야는 근자에 프랜차이즈 감자탕집까지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왜 감자탕이라 이름을 지었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합니다. 돼지 척추뼈를 감자뼈라고 불러서 그리되었다고 하지만, 수의 해부학에도 없는 말입니다. 탕에 감자를 많이 집어넣어서 그렇게 명명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부재료가 주재료를 제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그렇다면 정체불명의 감자탕이라는 이름을 고집하기보다는 정겨운 수원 사투리인 '사뎅이'를 쓰는 것은 어떨지요?
대학교 예과 시절엔 최류탄 가루를 씻어내는데 감자탕만한 것이 없다고 하여 하루가 멀다 하고 먹으러 다녔습니다. 그 때 다녔던 식당 중에 기억나는 곳이 신림천변에 위치한 '녹두집'입니다. 카바이드로 익힌 막걸리에 감자탕을 먹다보면 기절하는 친구들이 속출했는데, 구토하러 밖에 나갔다가 신림천으로 떨어져 중상을 입었다는 이야기도 가끔 들리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김민기나 여러 노래패들이 만든 운동가요도 술자리에서 열심히 불렀는데, 논리적으로 말도 안 되는 노래도 많았습니다. 여하튼 그 때 녹두집의 메뉴 이름은 분명 '사뎅이'였습니다.
그제 동네에 있는 프랜차이즈 감자탕집을 갔습니다. 코감기가 심하여 눈물 콧물이 줄줄 나오는데, 마치 ‘녹두집’ 사뎅이로 최류탄 가루 씻으러 갔을 때 나오는 콧물과 겹쳐져 만감이 교차하더이다.
깻잎이 아예 꾸미로 나옵니다. 예전에는 깻잎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한데, 이러다가 감자탕이 깻잎탕으로 바꾸지는 않을까요?
뭔가 굉장히 양이 많은 듯 보여도 정작 먹을 건 별로 없습니다. 나중에 남은 국물에 밥을 볶아 먹는 게 더 맛있죠.
돼지 척수가 노오랗게 들어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