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이 많이 사라진 농촌에 가보면 전원도 켜져 있지 않은 낡은 냉장고에 하나 가득 약들이 쌓여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빨강, 파랑 알약들이나 캡슐약, 가루약도 포장지 하나 가득 있을 뿐 아니라, 비닐 팩에 담긴 한약과 통에 든 비타민까지 합치면 말 그대로 약만 봐도 배부를 정도다. 약의 내용도 다양해, 당뇨병, 고혈압, 관절염, 심장병, 전립선비대증과 같은 만성질환에 쓰이는 약들 말고도, 건강에 좋다는 영양제, 한약, 보약, 건강보조식품, 며느리가 보내준 수입약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약들이 어지럽게 한다. 게다가 할아버님들이 할머니 모르게 한구석에 숨겨둔 약들이 있으니, 흔히 ‘happy drug’이라 부르는 성관계와 연관된 약물들이다.
여자들 모르게 남자들만 숨겨놓고 먹는 약들이 있다. 나이가 들면서 약해진 발기기능을 도와주는 ‘발기부전치료제’와 사정이 너무 빠를 때 먹는 ‘조루증치료제’가 그것이다. 엄격히 말하면 발기기능을 근본적으로 고쳐주는 발기부전의 치료제라기보다는 나이가 들고 각종 성인병으로 약해지는 성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해결사’역할을 하는 약들이다. 처음 약이 발견된 스토리가 기막히다. 심장약으로 약을 타 먹던 환자들이 심장병이 다 치료가 되었는데도 약을 더 달라고 매달리더란다. 조용히 그 이유를 물어보니 발기가 안돼서 성관계를 못하던 노인들에서도 발기가 쑥쑥 잘되더란다. 그렇게 발견되어 세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비아그라’가 발명되었고, 이제는 세월이 흘러 특허권이 끝나자 작년부터 내노라 하는 모든 국내 제약사들이 저마다 가격도 저렴하고 재미난 이름으로 복제약을 만들어 환자들의 선택을 쉽게 해주고 있다.
아직 특허권이 남은 여러 약들도 각장의 효능과 장점이 있어, 다양한 환자에서 개개인에 맞는 약을 전문의의 지도하에 먹고 있다. 효과도 좋아 친구들끼리도 서로 권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생길 수 있는 오남용이나 부작용을 막기 위해 정확한 용법과 용량을 의사에게 배워 사용하여야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먹는 약으로 안 되더라도 얼마든지 차선책이 있어 실망할 필요가 없다.
조루증은 사정이 너무 빨라 본인도 민망하고 허탈하지만, 파트너 역시 불만일 수 있는 가장 흔한 질환이다. 기준도 제각각이나 편안한 상대와 편안한 공간에서 반복적으로 성관계를 하는데도 너무 빨리(다양한 기준이 있으나, 보통 1~3분 이내) 사정을 하는 질환으로 천천히 흥분에 오르는 여성 파트너에겐 성관계에 몰입하기 어려운 장애가 되곤 한다. 과거엔 정신과에서 쓰이는 약물 중에 몇 가지가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알려져 조금씩 쓰였으나 복용의 불편함이나 약효가 제각각이라 충분하지 못한 편이었다. 수년전부터 발기약처럼 성관계 한 시간 전에만 먹어도 효과가 좋은 약도 나왔고, 최근 다른 종류의 약도 나오면서 보다 많은 환자들이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두 달 전쯤 개인사업을 한다는 50대 중반의 남성이 찾아와 발기부전에 관한 상담을 했다. “다른 병원에서 검사도 해 보고 먹는 약을 계속 먹어 왔어요. 자주 오기 어려우니 100알만 처방해 주세요.”, “그 많은 양을 혼자 다 쓰시게요?”,“사업하다보니 접대할 때도 아주 좋더라구요...”
물론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본인이 쓰실 만큼만 처방했다. 내가 써 보니까 좋으니 다른 사람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에 여기저기 권하고 다니신다는 얘긴데, 잘못하면 사업파트너를 영영 잃게 될 수도 있다. 가끔 남자들 술자리에서도 친구끼리 주고받거나 심지어 술집 경영전략의 도구로도 쓰인다는 소문도 들리는데, 이 역시 매우 위험한 일이다. 자신에게 잘 맞고 안전한지를 반드시 의사와 상의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글: 조성완
이윤수조성완 비뇨기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