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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음식물 조각이 치아를 손상 시키면!

[이승훈의 재미있는 입속여행]- <15>

 

 

<환자이야기> 

평상시 먹는 재미 자체 보다는 누룽지, 검은 콩 뻥튀기 등 단단한 음식을 깨는 식감을 즐기는 A. 며칠 전 친구들과 삽겹살에 소주 한잔 하다가 오돌뼈를 씹던 중 깜짝 놀랄 만큼 찌릿한 느낌이 있었다. 그 이후로 식사 시에 가끔 그때처럼 깜짝 놀라고는 했다.

불규칙하게 찾아오는 불쾌감 때문에 무엇인가를 먹을 때 마다 신경이 쓰여서 먹는 재미가 이전 같지 않아서 치과를 찾았다.

 

하지만 이것저것 두드려보고 사진도 찍어 보고 한참을 보던 치과의사왈 "조금 더 써보다 오셔야 겠습니다."

너무 실망스러운 대답에 기운이 빠진다. 남은 당장에 신경 쓰여서 잘 먹지도 못하는 상황인데 환자의 아픔을 몰라주는 치과의사의 모습에 화가 났다.

 

<치과의사 이야기> 

일진이 안 좋은 날이다.

어떻게 하루 만에 crack 환자를 4명이나 볼 수가 있단 말인가.

당장에 불편한 환자를 조금 더 써보고 오라고 돌려보내는 것은 정말로 못할 짓이다.

설득하는데 시간 뺏기고 해드린 게 없으니까 돈도 못 받고.

아픈데를 딱 짚어서 진단하지 못하니까 돌팔이 소리 듣기 딱 좋은 상황이다.

하지만 의사의 양심상 일단 치료하고 보는 식으로 진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Cracked tooth는 치과의사를 가장 난감하게 만드는 질환 중 하나로 linear fracture라고도 하는데 쉽게 얘기해서 치아가 깨지면서 실금이 간 것을 의미한다.

우리 몸에서 가장 단단한 조직이라는 치아가 깨졌다는 말에 의아해할 분도계시겠지만 보통 단단하다고 얘기하는 것은 파절 강도라기보다는 마모 강도를 의미한다. 치아를 이용해서 다른 단단한 것을 갈아낸다면 치아의 마모가 적겠지만 강하게 부딪혔을 때 어떤 것이 부서질 것이냐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언젠가 본 영화에서 이혼을 결심한 남편이 다이아몬드로 된 결혼반지를 쇠망치로 두들기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 경우 다이아몬드는 산산 조각이 날 것이다유리로 만든 검과 나무로 만든 검을 부딪혔을 때 생길 일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하지만 치아는 생체 조직이고 또 치주인대를 비롯해서 씹는 힘을 분산시키기 좋은 구조로 되어있기 때문에 어지간한 충격에는 잘 깨지지 않는다. 아주 특이한 상황만 아니라면.

 

 

 

 잠깐 다른 얘기를 해서 이집트의 피라밋을 생각해 보자그 거대한 돌덩이를 옮겨서 쌓은 것도 대단하지만 당시 기술로 어떻게 그 큰 돌을 정확하게 자를 수 있었을까? 먼저 돌에 자를 형태에 맞게 일렬로 쐐기 구멍을 파고 쐐기를 박아 넣는다. 그리고 나무로 된 쐐기에 물을 부어서 삼투압에 의해 쐐기의 크기를 키운다. 처음 별 것 아닌 듯한 크기 차이지만 빗면의 힘을 타고 아래로 전달되고 결국 커다란 바위는 잘라지게 되는 것이다.

 

비슷한 일이 치아에서도 일어나는 것이다.  

치아의 모양은 쐐기 구멍을 가지고 있는 바위와 비슷하게 생겼다.

저 구멍에 딱 맞는 단단한 음식물 조각이 우연히 들어가고 또 적절한 힘이 가해진다면 치아에는 작은 실금이 가는 것이다. 처음 단단한 것을 씹었을 때의 깜짝 놀라는 증상은 이때 느껴지는 것이다. 이후 씹을 때마다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지만 드물게 그 금이 간 방향과 일치하는 힘이 가해질 때는 비슷한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이 상태로 계속 치아를 사용하다보면 깜짝 놀라는 빈도수가 점점 증가하게 된다.

 

유리창이나 유리문에 한번 금이 가면 계속해서 금의 크기가 늘어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그리고 결국 그 금이 뿌리까지 전달이 되면 해당 치아는 뽑아야만 한다.

 

  

발치를 막고 환자의 불편감을 없애기 위해서는 해당 치아는 근관 치료(신경 치료후 금속으로 수복(crown)해 줘야만 한다.

 

해결책이 있기는 하지만 cracked tooth야 말로 의사와 환자 모두를 골탕 먹이는 대표적인 질환이다.

 

일단 진단이 매우 어렵다.  

초기 fracture의 경우 현미경으로도 보일까 말까한 미세한 실금이기 때문에 치과의사가 육안으로 발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더욱이 환자 역시 한달 내지는 1주일에 한번 정도로 증상을 느낄 정도이기 때문에 어떤 치아가 문제인지 정확한 진단이 어려워진다.

환자는 '이 치아 같은데요.'라고 주장하지만 신경 분지가 엄청나게 복잡한 구강 내 환경이므로 원인부 이에 주변부가 아플 가능성을 감안하면 정확히 어떤 치아가 문제인지 알기가 어렵다.

 

근관 치료 후 금속으로 씌운 후에도 해당 증상이 계속 나타났다면 아무 문제없는 치아의 치수를 제거하고 치질을 삭제한 셈이고 환자는 자연 치질의 손상과 치료 과정에서의 시간 손해 거기에 비싼 보철 시술에 따른 진료비 부담까지 생기게 된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치과의사들은 '좀 더 써 보다가 증상의 빈도가 조금 더 반복되면 오기'를 권한다. 즉 완전히 부러져 나가지는 않고 아픈 증상은 확실한 그 정도까지 금이 커지기를 기다리는 셈이다

 

다음으로 근관 치료 후 금속으로 수복한다 하더라도 그 예후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치아는 장식품이 아니기 때문에 계속해서 어마 어마한 저작력을 견뎌야만 한다.

 

하지만 수복을 했다 하더라도 여러 방향에서 힘이 전달된다면 금은 계속해서 커질 가능성이 많다. 유리로 된 문에 금이 갔을 때 해당 부위를 테이프로 보강한다고 해도 결국은 금이 점점 더 커지는 것과 비슷하게 보면 되겠다.

 

마지막으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cracked tooth는 치과의사를 정말로 난감하게 한다.

충치 치료, 근관 치료, 스켈링 등의 진료를 받기 위해 내원한 환자의 진료 과정에서 갑작스럽게 치아의 실금이 나타나면 환자들은 대부분 치과의사가 치료하다가 이를 부러뜨린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환자들은 일이 터지기 전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하는 사전 설명에는 대부분 동의하지만 일이 터진 다음에 '원래 이렇게 되기도 합니다.'하는 식의 사후 설명은 변명에 급급한 모습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치아 하나하나 치료할 때마다 '이 치아 실금이 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하고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의사 입장에서는 참 난감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다.

 

진료 시에 있을지 모르는 돌방 상황을 다 설명하다보면 '진료 중에 운석이 떨어져서 죽을 수도 있습니다.'까지 동의를 얻어야할지 모른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결국 진단도 어렵고 치료도 어렵고 예후도 안 좋은 질환이기 때문에 cracked tooth의 경우 예방이 최고이다.

cracked tooth를 막기 위해서는 우선 단단한 것을 부셔서 먹는 식생활을 바꿔야한다.

cracked tooth의 경우 서양인에 비해 한국인들에게서 엄청나게 호발하는 편인데 이는 누룽지, 검은콩 뻥튀기, 삼겹살 오돌뼈, 게껍질 등 단단한 것을 분쇄하는 식감을 즐기는 식생활이 원인이다.

다음으로 밥을 지을 때 작은 돌을 잘 골라주어야 한다. 요즘이야 드물긴 하지만 과거에는 밥에 섞인 돌 때문에 cracked tooth가 많이 발생 했다. 특히 치아의 파인 모양이 U형태가 아닌 V형태인 사람은 cracked tooth에 취약하기 때문에 더욱 주의해야하니 구강 검진 시 치과의사에게 물어 보도록 하자.

 

 마지막으로 혹시 cracked tooth가 생겼다면 미루지 말고 치과를 방문하도록 하자.

치과의 여느 질환과 마찬가지로 의사에게 늦게 보이면 보일수록 치아 상실의 가능성은 높아갈 뿐이다.

독자 여러분의 구강 건강과 즐거운 식생활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길 바라며 다음 시간에는 무허가 보철물(일명 치과돌팔이)의 폐해에 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글: 이승훈

필자 이승훈은 단국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이수백치과 원장으로 근무 중이다.

대한치과의사문인회 회원으로 진료와 더불어

개성이 강한 작품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