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라는 전문직업인이 생겨나게 된 까닭은 인간의 질병 때문에 유발되는 고통(pain)을 줄여주어야 할 의무를 부여받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의사들은 질병과 싸우면서 언제나 고통의 원인을 찾아 제거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통제거에 대한 이해와 지식에 미흡함이 너무 많지 않았나 생각된다.
통증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신체의 특정한 부위에서 생기는 불쾌감(unpleasant sensation)을 말하는 것이지만 그 불쾌감이란 환자 스스로가 호소하는 막연한 주관적인 통증의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의학적으로 그 통증의 심도는 알아내기가 매우 어렵다. 의학에서는 통증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는 육체적 통증만을 생각한다. 고통은 육체적 질병에 의해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둘러싼 모든 것에서부터 일어나는 극히 인간적인 현상이다.
현재의 삶을 살고 있는 우리 인간들은 여러 부분의 끊임없는 크고 작은 손상(고통)을 받고 있다. 그것은 슬픔, 분노, 외로움, 불행, 회피, 열망 등으로 표현돼 나타나며 의학에서는 고통의 외형적 표현에만 관심을 가질 뿐 고통 그 자체의 의미에는 객관성이 없다는 핑계로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 의학적인 병리적인 현상으로만 인간의 고통을 이해하기에는 그 고통의 탄력성이 너무 넓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그것에 대한 접근 또한 다양한 각도에서 고려되어져야 할 문제일 것이다.
치과병원을 찾아오는 환자들의 대부분은 신체적 통증 때문이지만, 그 신체적 통증 뒤에 숨어있는 심리적 통증에 대한 고려를 놓쳐서는 안 된다. 치과치료에 대한 막연한 치과공포증 환자의 경우는 동통에 대해 훨씬 민감한 반응을 보이게 된다는 점이다. 치과마취용 주사 바늘의 크기(guage)를 달리해서 주사를 놓아보았더니 바늘의 크기에 대한 동통의 차이를 느끼지 않았다는 보고가 있다. 다시 말해서 동통이란 어떤 손상의 양(量)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손상을 받은 환경이 더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의 발달된 의료장비와 개발된 진통제가 동통을 없애는데 완전한 수단이 될 것이라고 의사들이 지나치게 자위하고 있다면 그것은 동통에 대한 접근에 오류를 범할 여지가 많다. 우리치과의사들이 환자의 아픈 곳만 찾아 치료해 주는 일 뿐만 아니라 환자의 공포심, 근심, 걱정과 같은 환자들의 마음도 함께 치료해주는 폭넓은 동통의 해석이 필요한 것이다.
‘아무리 아프게 치료하더라도 그것은 참을 수 있지만... 치료비가 많이 나오는 것은 견딜 수 없어...’ 환자들의 진정한 아픔은 바로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글: 최상묵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덴틴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