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후엔 꽤 많은 비가 쏟아졌습니다. 한동안 창밖을 바라보다 문득 오래된 노래 한 곡이 생각났습니다. Gazebo가 1983년 발표한 ‘I Like Chopin’. 이 노래를 기억하는 분이라면 아마 ‘Rainy days’로 시작하는 그 익숙한 후렴구부터 떠올리실 겁니다.
Gazebo는 이탈리아 싱어송라이터 Paul Mazzolini의 예명으로, 1980년대 유럽을 휩쓴 이탈로 디스코를 대표하는 뮤지션입니다. 그를 세계적으로 알린 ‘I Like Chopin’ 역시 유럽 여러 나라에서 차트 정상에 오르며 크게 히트했죠.
제목부터가 재미있습니다. ‘나는 쇼팽을 좋아해.’ 그런데 정작 이 노래에는 쇼팽의 음악이 한 소절도 들어 있지 않습니다. 쇼팽의 선율처럼 느껴지는 인상적인 피아노도 작곡가 Pierluigi Giombini가 만든 멜로디입니다. Gazebo는 훗날 이 노래가 ‘쇼팽과 프랑스 작가 조르주 상드의 사랑’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노래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묘한 낭만이 흐릅니다. 쇼팽과 조르주 상드, 피아노와 비, 그리고 지나간 사랑. 실제 쇼팽의 음악은 등장하지 않는데도 ‘Chopin’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곡 전체가 어느새 낭만적인 이미지에 젖어듭니다.
가사는 비 오는 날 떠나간 사랑을 떠올리는 내용입니다. 그렇다고 이별을 붙잡고 절절하게 슬퍼하지는 않습니다. 이미 지나가버린 사랑을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슬프다기보다는 쓸쓸하고, 아프다기보다는 그립게 들립니다.
음악적으로도 이런 분위기가 절묘하게 표현됩니다. 전자드럼과 신시사이저가 만들어내는 전형적인 1980년대 이탈로 디스코의 리듬 위로 클래식한 느낌의 피아노가 흐르고, 그 위에 Gazebo의 무심한 듯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얹힙니다. 경쾌한 듯 쓸쓸하고, 차가운 듯하면서도 낭만적입니다. 이런 상반된 느낌이야말로 ‘I Like Chopin’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소개드린 Gazebo의 ‘I Like Chopin’은 4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들어도 여전히 세련된 노래입니다. 신시사이저에서는 분명 1980년대의 냄새가 나는데, 피아노가 흐르는 순간 그런 시간의 경계마저 희미해집니다.
오후부터 전국적으로 꽤 굵은 단비가 내렸습니다. 그래서였나 봅니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그 피아노 선율이 슬그머니 다시 듣고 싶어진 것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