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명예교수이자 전 서울대학교치과병원장을 지낸 장영일 선생이 7월 25일 밤 별세했다. 향년 81세.
고인은 서울대학교치과병원의 독립법인화를 이끌며 오늘날 병원의 기틀을 마련했고, 대한민국 치과교정학의 국제화와 전문의 제도 정착에 큰 족적을 남긴 치과계의 원로로 평가받는다.
1970년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한 고인은 서울대학교병원 치과 전공의 과정을 거쳐 1976년 서울치대 조교로 임용된 이후 약 35년간 교육과 연구, 진료에 헌신했다. 2011년 정년퇴임과 함께 명예교수가 된 뒤에도 의료분쟁 감정과 공공의료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고인의 가장 큰 업적 가운데 하나는 서울대학교치과병원의 독립법인화이다. 2004년 서울대학교치과병원이 독립법인으로 출범하는 과정에서 설립준비본부장을 맡아 실무를 총괄했으며, 초대 병원장으로 취임해 2010년까지 병원의 안정적인 운영 기반을 구축했다. 법인화 초기 조직 안정과 시설 확충, 진료 시스템 개선, 공공성 강화에 힘쓰며 현재 서울대학교치과병원의 성장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6년 대한치과의사협회 '올해의 치과인상'을 수상했다.
치과교정학 발전에도 평생을 바쳤다.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교정과 교수로 재직하며 매복치 맹출유도와 미니임플란트를 활용한 교정치료 등 다양한 임상 연구를 수행했고, 관련 연구는 국제학술지 Journal of Clinical Orthodontics(JCO) 표지 논문으로 선정되는 등 세계적으로도 주목받았다. 또한 Proffit의 교정학 교과서 번역을 비롯한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통해 국내 교정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2011년 대한치과의사협회 학술상을 수상했다.
특히 1994년부터 1996년까지 제18대 대한치과교정학회장을 역임하며 국내 단일 치과학회 최초의 국제학술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등 학회의 국제화와 위상 제고를 이끌었다. 이는 오늘날 대한치과교정학회가 세계적인 학술단체로 성장하는 기반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치과계 제도 발전에도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다. 1998년 치과전문의제도 불시행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과정에 기여하며 전문의제도 도입과 정착의 토대를 마련했고, 이후에도 관련 제도 개선 논의에 지속적으로 참여했다.
정년퇴임 이후에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상임감정위원으로 의료분쟁 해결에 힘썼으며, 중앙보훈병원 치과병원장을 맡아 보훈 대상자와 일반 환자의 진료 환경 개선, 학술 활동 활성화에도 헌신했다.
생전 고인은 자신의 삶을 "도전과 열정"으로 표현하며, 후배들에게는 "치과의사는 천직이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자주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육자이자 연구자, 병원 경영자, 그리고 제도 개혁가로 평생 치과계 발전을 위해 헌신한 그의 삶은 우리나라 치의학 발전사에 오래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2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7월 28일 오전 6시이다. 장지는 서울추모공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