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팅!”은 객지에 와서 고생하는 영어다. 운동선수를 응원하거나 다 함께 분발하자는 구호인데, 본래 “Go!”를 쓰는 미국인은 이해하지 못한다. 가자! 또는 계속해! 쯤 되겠다. 중국에서는 “짜유(加油)!”라고 외친다는데, 불에 기름을 붓는다는 표현이 그럴듯하다. 우리말로 읽으면 “가유!”이니 오리지널은 혹시 충청도 사투리 아닌가? 예전에 디스코 클럽에 가면 아슬아슬한 비키니를 걸치고 손님들 율동을 리드하던 ‘Go-go Girl’도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고’ 하면 단연 ‘국민 카드놀이 고스톱’이다. 돈을 많이 잃으면 ‘열(熱) 고’ 모드에 들어가 “못 먹어도 고!”하지 않는가? 암호화폐의 한국 시장규모가 세계 3위로 GDP 비중에 대비하면 열배나 된다니, 역동적이요 격정적인 우리 특유의 쏠림현상에 불이 붙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구호마저 “가즈아, 즉 가자!”로 글로벌화 하였다. 노름꾼들이 ‘봉’을 한 번 찍으면, 6개월에서 1년씩 공들여 ‘설계’를 한다.작업이 성공이든 실패든 간에 결국 돈을 버는 쪽은, 수수료나 자릿세를 챙기는 설계사와 하우스(장소제공자)다. 월가의 전횡을 막자는 비트코인이, 설계 시점부터 투기와 도박을 계획했을 리 없다. 그러
탄핵당한 닉슨을 승계한 미 38대 대통령 제랄드 포드는, 취임 즉시 전임자를 사면하고 스스로 차기출마를 포기한 의리의 사나이다. 대학풋볼 스타로 프로 제의를 마다하고 변호사가 된 전력에다가, 실패한 후임 카터 덕분에 잔잔한 인기를 누렸다.가장 큰 걱정꺼리는 자신이 발행한 수표가 은행에 돌아오지 않는 것이었다. 시민들은 전직 대통령이 사인한 수표를 가보로 간직했는데, 이 수표들이 어느 날 한 번에 몰려오면, 부도를 막기 어려운 때문이다. 운수업으로 대박이 난 한진 조중훈은, 재벌에 걸 맞는 사옥을 지으려고 이병철이 소유한 소공동 노른자위 땅을 점찍고, 월남서 벌어들인 막대한 현찰로 삼성 어음을 계속 사들였다. 어느 날 찾아가,“이 땅 나한테 파시오.” 당연히 거절하자 가방에 든 수표를 좌르르 쏟아놓고,“이거 몽땅 돌릴까요?” 이 두 가지 일화는, 시중에 나돌던 ‘믿거나 말거나’ 식 야사(野史)이긴 하지만, 어음이나 수표의 엄청난 위력을 잘 설명하고 있다. 어음은 십자군 원정 때 원거리 송금을 위해 개발되었다고 한다. 기독교와 이슬람 문화의 만남을 넘어, 총 통화량이 폭발적으로 늘고, GDP를 몇 배 키웠다. 사극 ‘객주’나 ‘상도’에서 보는 조선시대 상단의
여러 나라가 화폐단위로 쓰는 달러는 계곡을 뜻하는 독일어 ‘thaler’에서 왔다.이런 형태의 은화를 처음 찍어낸(mint) 지방이름이라고 한다. 미국 달러의 라인업은 cent-nickel-dime-quater-half dollar-dollar, 즉 1-5-10-25-50-100 센트로 되어있다.그러나 영어에는 실체가 없는 비트(bit = 12.5센트)라는 말을 더 흔히 쓴다. 식민지 시절 미국에서는 스페인 달러가 널리 유통되었는데, 이 은화를 줄을 따라 여덟 쪽으로 쪼개면 1/8 달러짜리 ‘잔돈’, 즉 비트가 되었단다. 그래서 달러 기호는 숫자 8의 반 토막인 S 위에 허큘리스의 두 기둥을 내려 그은 것이란다. Bit의 첫째 의미는 ‘쪼가리’이니까 시장에서 가장 많이 통용된 화폐단위였으리라. 컴퓨터의 최소 정보단위 1 바이트(Byte)가 8 개의 2 진수(bit)로 되어있다는 사실도 재미있다. 은행은 대출 즉 돈 팔아 돈 버는 돈 장사다. IT 버블 이후 고객이 씨가 마르자 미연방은행(FRB)은 기준금리를 1%로 낮추고, 신용등급이 낮은 Sub-prime까지 대출을 확대한다. 싼 돈으로 집을 사서 꽃단장해 팔면 목돈을 버니, 서민들은 중산층 진입의 꿈에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스님은 지난 11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선거는 공동체의 화합을 깨고 장로정신과 위계질서를 파괴하며 표를 팔고 사는 폐단이 있어, 전체 선거제도를 재검토 하겠다”고 말했다. 물론 직선·간선을 포함한 종교계의 고차원적인 발언이지만, 때로는 맹목적적·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는 선거제도의 단점을 꿰뚫고 있다. 오류 확률을 줄일 여과장치는, 경륜과 판단력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대표를 뽑은 다음 그들에게 구체적인 최종결정을 맡기는 ‘대의정치’가 아닐까?협회장 직선제 요구가 대두될 때마다, 치의신보에 기고한 ‘프랙톨과 직선제(1995년 3월)’라는 칼럼 외에도, 필자는 누차에 걸쳐 반대 의견을 낸바 있다. 어차피 후배들이 짊어질 치과계이기에 몇 년 전부터 입을 다물었고, 선거인단 제도를 거쳐 이제 김철수 직선제 초대협회장이 탄생하였다. 직선제 하에서 의사회와 약사회가 겪는 험한 꼴을 여럿 보았고, 그것이 바로 반대 이유이기도 했으나, 설마 협회장 ‘당선무효소송’의 형태로 나타날 줄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첫째, 이 소송을 헌재(憲裁)로 풀면 단연 기각이다.선거결과에 승복한 두 분이 모두 부인하니까, 원고는 이해당사자가 아닌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의 인구는 한국 기초 자치단체 정도요, 우리 GNP가 해방 당시의 5백배라는 점으로 미루어보면, 총생산은 몇 천분의 일도 못 되었을 것이다.인구 2만의 도시국가를 가정해보자. 절반은 생업과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노예요, 다시 그 절반은 참정권이 없는 여성이다. 평균수명도 극히 짧아서(노인이 드물다) 미성년자를 빼면 광장에 나올 남정네는 2, 3천 명 내외이니, 정치에 관심이 없거나 내 일이 더 바쁜 사람, 여행 또는 와병 중인 남자를 빼면 고작 천명 남짓이 남는다.생활양식과 산업구조가 단순하여 이익 충돌이나 분쟁 소지가 적고, 설령 있어도 전통과 관습에 따라, 또는 원로의 중재로 간단히 해결된다. 행정수요와 예산형편으로 보아 상비군이나 상근 관료조직을 운영하기도 어렵고 만들 필요도 없다. 일정기간 관리운영을 맡길 심부름꾼(지도자) 선출과 중대한 경제문제의 결정 또는 전쟁 따위의 외교적 결단이 아니고는 별로 토론하고 의결할 일이 없다. 이상이 광장의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했던 이유다. 노예제도를 포함하여 이런 이유들을 뒤집어보면, 현행 간접민주주의의 당위성이 명백해진다. 국가규모가 크고 시민 의식이 강해진 로마공화정에서 간접민주주의의 원형으로
하늘이 주신 재능을 불꽃처럼 방전하고 2, 30대에 생을 마감한 모차르트 푸슈킨, 가깝게는 이상... 천재는 요절한다. 그러나 역도 진리는 아니어서 장수한다고 둔재는 아니다. 뉴턴 괴테 위고... 물론 의학지식과 농업생산성이 턱없이 낮던 옛날얘기다. 다행스럽게(?) 30대를 넘겨 나이 든 천재는 괴롭다. 내 눈에도 경이로운 나 자신의 업적을 어떻게 뛰어넘을까? 치받고 올라오는 후진들도 조바심을 부추긴다.쫓기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렇지만 한 번 생각을 바꿔보자. 잔챙이 중에서 준척(準尺)은 폼이야 나겠지만, 월척과 어울려야 오래 살고, 씨알이 굵어야 낚시꾼도 몰린다. 영화계 황금기는 문희 남정임 윤정희의 1세대와 장미희 정윤희 유지인의 2세대 트로이카 시대였고, 소설도 조정래 황석영 최인호의 선 굵은 서사(敍事) 삼총사 시절에 인기를 끌고 책도 많이 팔렸다. 흔히 일인천하 독주를 꿈꾸지만, 열띤 경쟁은 판을 키우고 격을 높이니, 작가에게 필수품이요 고마운 존재다. 치열한 경쟁의 스트레스를 벗어나는 방법 첫째는, 초반 점수 차를 확실히 벌려놓는 프로골퍼 식이다. 마지막 라운드에 여유 있게 우승하지만, 모든 자료가 열려있고 만인이 뛰어난 오늘날, 독
송년회 인사말의 화두는 어김없이 ‘다사다난했던 한 해’다. 금 수저·흑 수저 가릴 것 없이 인생은 고해란다. 일찍이 인도 가비라성 왕자의 출가로 증명된 사실이다. 연말에 스스로를 되돌아보니, 지난 한 해 어지러운 삶의 궤적들이 새삼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다. 계유년(癸酉; 1993) 말에 칼럼 “닭의 해를 보내며”를 썼다. YS가 ‘역사바로세우기’로 율곡비리·실명제·하나회 등 토종닭 마당 파헤치듯 하더니, 국민소득 2만 달러 대통령이 되려는 집착으로 IMF를 끌어들여, 취임 초 83%이던 지지율을 6%로 까먹고 파산했다. 계유정란(단종원년: 1453)은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려고 황보인·김종서 등 원로대신들을 척살한 사건으로, 조선을 멍들게 한 성리학 교조주의와 매관매직의 시작으로 기록된다.2005년 을유년에는 ‘참여정부’에서 검찰조사를 받던 거물급 인사들이 줄줄이 자살하였다. 대통령은 자신만만했으나, 10·26 재선거에서 여당후보 23명이 전패하였다. 기적적인 소생은 다음 해에 보인 생즉사(生則死) 사즉생의 묘기, 탄핵정국 덕분이었다. 빈사상태의 여당이 던진 구타유발의 미끼를, 야당이 덥석 물은 것이 패착이라는 야릇한 해석도 있다. 여하튼 닭발처럼 파
초딩 때 윤백남의 소설 ‘흑두건’을 읽었다. 배경이 인조반정 전후였던가?천하장사들이 만나 힘을 겨루는데, 갑이 손가락으로 굵은 호두알을 아작 깨뜨리자 을은 두툼한 엽전을 종이처럼 접는다. 부엌에서 딱딱 소리가 나서 가보니 한 총각이 아궁이 앞에 앉아 팔뚝만한 참나무를 가볍게 분질러가며 불을 땐다. 과장인 줄 알면서도 지붕 위를 훨훨 날아다니는 영웅호걸들의 활극에 가슴이 뛰었다. 일제의 강압 하에서 개화기를 맞은 선배들은 역사극처럼 제한된 소재로 흥미위주의 글을 많이 썼고, 이런 풍조는 극한적인 대립과 전쟁으로 멍들었던 해방 후에로 이어졌다.어려운 시절일수록 사람들은 영웅호걸에 열광하고, 주인공은 영어로 히어로·히로인 아닌가? 어쨌든 이광수의 ‘단종애사’ 김동인의 ‘젊은 그들’ 박종화의 ‘금삼의피’는 우리의 역사관에도 큰 영향을 주었고, 소재가 무궁무진한 세계적인 문화재 이조실록 덕분에, 사극은 여전히 소설·드라마의 노다지판이다. 사극 DNA는 7-80년대 3대 구라 황석영 조정래 최인호로 꽃을 피우는데, 출세작 ‘장길산’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했던 탓인지, 황 작가는 스스로를 얘기꾼(Story Teller)이라며 자세를 낮춘다. 창조적이고 인문학(Human
타계한 지 3년인데 김상기 전 대전MBC 사장 얼굴이 가끔씩 떠오른다. 전부터 얼굴은 알아도 나이차 파탈하고(신흥초등 대전중·고 서울대 모두 4년 후배) 자주 만난 건 2010년 경 부터다. 상배(喪配: 2007) 후 한 번도 빠짐없이 매주 대전공원의 아내 묘를 찾던 열부(烈夫)가, 가까운 동기 월례모임에 필자를 초청한 것이다. 삼국지 하면 적벽대전 때 양측사상자 숫자를 뚜르르 꿰는 기인(奇人?)인데, 무엇에 필이 꽂혔는지 올 때마다 필자를 꼭 불렀고, 술 한 방울 못하면서도 좋은 포도주를 서너 병 씩 들고 왔다.모임에 얽힌 추억 중에, 게스트로 초청한 미국인 교수와 필자가, 카페 ‘팔로미나’에서 벌인 팝송 따라 부르기 대결(?)을 기억한다. 하루는 아내를 향한 절절한 그리움을 담은 시집 ‘아내의 묘비명(銘)’을 몇 권 주었다. 읽으면서 몇 번이나 가슴이 먹먹했는데, 이튿날 집사람은 두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육십 넘은 아마추어의 첫 시집이 이토록 감동을... 그래서 시의 생명은 ‘진정성’에 있다던가? 얼마 뒤 4천 권이 넘게 팔렸다면서, 시집으로서는 베스트셀러요 기적이란다.곁들여 MBC 보도국장 시절 들은 ‘사재기’ 얘기를 들려준다. 많은 출판사들이 책을
1995년 디트로이트의 2년제 지역대학(Community College)에 들렸다. 구강위생과를 비롯하여 20개과 중 CSI(Crime Scene Investigator; 범죄현장 조사)과가 신기했는데, 이제는 미드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지역주민은 학비가 없고, 4년제 대학에 진학하면 취득 학점을 그대로 인정한다. 1988년 방학 중에 대학 문창과가 시민을 위한 강좌를 열었다. 글쓰기에 문외한인 아내가 친구 따라 등록하더니, 기승전결에 주제가 뚜렷한 콩트 세편을 써내고, 홍보이사로서 대전광역시 약사회지를 창간하여 3년을 꾸려갔다. ‘외갓집 풍경’은 필자의 ‘할아버님 댁’과 짝을 이루어, 서정 태선희의 그림으로 꽃단장한 뒤 대전문학관 ‘명사 시화전’에 걸렸다가, 이제는 우리 거실로 돌아왔다. 치인문학 윤양하 원장의 주선으로 멜로디까지 얻었다(CD).이제 상설강좌로 자리 잡은 문창과 강의는, 노후 시민들에게는 생의 의미를 다시 부여하고 사회통합에도 기여하는, ‘제2의 문맹퇴치 운동’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걸출한 이야기꾼(Story Teller) 황석영 씨의 말실수(?)가 잦다. “오늘날 한국문학이 이 꼴이 된 것은 문예창작과 때문(2015. 9).” 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