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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고약한 세상 7 : 아- , 도올!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212>


 

  “도올 김용옥은 방대한 불경 중에 ‘부모은중경’을 한 시간 교재로 선택했고, 강의내용은 본문의 해설 외에 덜고 더함이 없었다.”  경기치원 지(齒苑 誌; 2003. 4)에 기고한 칼럼 I. O. U.의  한 대목으로, 이는 네 번째 칼럼집의 제목이기도 하다.
 첨삭(添削)이 없다 함은 칭찬이 아니라, 서당훈장이 불러주는 한문해석 수준이라는 의미였다.  그 강의는 소위 동양철학의 권위자로서 도올에 대한 필자의 신뢰가 무너지고, 도덕경을 취미로 읽은 주부로부터 주류 학자들까지 왜 그를 폄하하는가를 깨닫는 계기였다.  한때 ‘노자와 21세기’ 세권을 사서 읽을 만큼 심취했고, 공자까지는 그냥 들을 만 했는데, 종교에 들어서자 ‘수박 겉핥기’의 바닥이 드러난 것이다.  팩트를 벗어날 수 없는 이과 분야는 지식의 전달에 쫓겨, 열강은 몰라도 명강·졸강이 없다.  문과 강의를 우직한 이과교수에 맡기면, 60분 강의가 5분에 끝난다.  이 50여분 공백이 바로 도올의 렉튜테인먼트(lecture + entertainment) 무대다.
 주의를 집중시켜 딱딱한 동양철학에 이해를 높이는 ‘강의의 기술’이라 하지만, 5분용을 한 시간으로 늘이려고 몇 가지 장치를 쓰고 있다.  본래 찌그러진 얼굴을 더 망가뜨리고, 신경질적인 소프라노에 해금이 변비 앓는 소리를 낸다.  박박 밀은 머리로 험상궂은 두상을 노출하고, 보통 사람이 엄두도 못 낼 기발한 옷을 입는다.
 무대에 그냥 서있기만 해도 폭소를 유발할 쇼맨십이요, 개그다.

 

   보성고와 고려대를 나왔다면 대다수 국민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지만, 그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멍에였을 수도 있다.  만석꾼 집안으로 증조부는 병사(兵使), 조부는 전라도화성 원을 지내고, 부친은 세브란스 의전·교토 대 의학부를 나온 의사란다.
 장형 김용준은 서울공대(前身)를 나와 미국유학을 하고 고려대 교수로 정년퇴직, 인품과 지성으로 학계의 존경을 받고, 누님 김숙희는 이화여대 출신 식품영양학의 권위로 YS 시절 교육부장관을 역임하였다.  장형과는 21년 터울로 조카와 동갑인데, 문제는 이들 모두가 경기 서울대를 나왔다는 것이다.  그 흔한(?) 장관도 못해봤고...
 명문거족 집안에서 태어난 것이 ‘열등감의 기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의 자랑인 하바드 대학 동양철학박사학위를, “줄리아드에서 국악(國樂)전공이냐?”고 비웃기도 하지만, 남이야 베트남 대에 가서 국문학 박사를 따온들 무슨 상관일까?
 문제는, 학문에는 방랑하는 열 명의 천재보다, 꾸준히 연구하고 노력하는 한 사람 외길인생이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동경대 하바드를 거쳐 대만유학까지는 경제력 있는 집안의 자유요 특권이며, 비교연구 차원에서 학문적인 기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예컨대 정형외과 전문의도 손·슬 관절 등 수많은 특화 전공이 일반화된 세상에, 불교를 넘어 기독교까지 아우르려는 것은, 학문적인 유랑자(Nomad) 아니면 철학 입문·개론을 강의하는 교양과목 담당 신참강사의 몫이 아닌가?

 

   백범이 투옥시절(1912, 36세) 이승만이 설치한 도서실에서 “그의 손때와 눈물자국이 얼룩진 책자를 볼 때, 배알치 못한 이박사의 얼굴을 보는 듯”하며 이승만에 대한 흠모의 정을 썼고(백범일지), 생전 내내 존경심을 간직하였다.  필자는 유아인과 도올의 평가보다는 당연히 백범의 판단을 믿는다.  지난 3월 KBS의 한 토크쇼는 허언(虛言)이 많아 바로 채널을 돌렸지만, 예컨대 신탁통치가 시행되었다면, 우리는 잘해야 동구의 소련 위성국가 수준으로 전락했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 ‘명색이 학자’들은 대부분 속세를 떠나, 자신이 일생을 천착해온 연구의 정리에 몰입한다.
 그 나이에 정치판까지 기웃거리는 철학자는 노마드를 지나쳐 학문의 홈리스다.     필자는 16일 밤, 길게 누운 용(龍) 앞에서 낄낄대는 지렁이 두 마리의 꿈을 꾸었다.

 

 

 

: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전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