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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곤지암의 추억 1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175>




 

   1996년 3월 대전광역시 치과의사회장 임기를 마치는 대의원 총회에서, 치과의사 신용협동조합(이하 신협)을 창립하라는 명을 받았다.  준비 위원회 구성과 발기인대회와 연수원 합숙훈련(5박 6일)을 거치는 한편, 자본금적립과 직원채용 및 임원진 구성까지 바쁜 날을 보내고, 12월에 재경부 인가가 나왔다.  시작부터 나름대로 몇 가지 원칙을 갖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운영비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치과용 합금 구판사업이었다.  신협 설립의 목표가 회원(조합원)들이 수입제품 비중이 높은 치과기자재 공급업자들의 담합과 독점에 휘둘리는 것을 막는 일이요, 그러면서도 군소업자들의 생업에 지장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이었기에, H 합금이 독점 거래하는 다른 신협들과는 달리, D 합금과 동시에 계약을 했다.


   정주영 회장이 소떼를 몰고 방북하여 금강산관광 사업을 트자, DJ 는 이를 돕기 위하여 관공서와 대기업에 관광객을 할당(?)하였다.  현시점에서 보아도 불가피한 결정이었다.  LG 금속 산하인 H 합금은 이 행사에 주 고객인 치과신협 이사장 및 실무책임자들을 초청하였다.  선상(船上) 세미나에서 C 상무와 A 팀장의 프레젠테이션을 보면서, 아차! 그동안 귓전으로 흘려들었던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LG 금속의 주력상품은 엔진에 촉매제로 들어가는 백금이며, H 합금의 매출은 회사전체의 4%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당시는 대부분의 치과가 순금과 캐럿트 메탈을 7 대 3으로 섞어 썼고, 선친은 금 은 동 백금을 7:1:1:1로 섞었는데, 크라운은 물론 국부의치 클래스프로서도 성능이 우수하였다.  문제는 백금의 질이 천차만별이라는 점으로, 50% 백금이 흔했고, 90%를 넘으면 순 백금으로 통했다.  단점은 아세틸렌 + 산소 토치로도 잘 안 녹아서, 롤러로 수십 번을 늘리고 또 늘려 얇은 판으로 만든 다음 기공가위로 잘게 잘라야만, 금은동과 함께 녹여서 합금제작이 가능했다.  이과(理科)계 실습을 해보면 ‘시약용(試藥用)’인 절대 알코올의 의미를 안다.  마찬가지로 ‘촉매’는 순도(純度)가 ‘9’가 네 개짜리라야 한다.  99.99% 백금을 다루는 회사라면, H 합금의 품질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었다.


   이듬해엔가 C 전무가 LG 소유 곤지암 CC로 우리부부를 초대하였다.  물이 있는 홀에 작은 섬 같은 거북이 바위가 있는데, 그걸 보고 치라면서 캐디와 함께 낄낄 웃는다.   왕회장(구자경) 별명이 거북이란다.   양 잔디가 라프까지 곱게 덮인 코스에서 라운딩을 마치니, 회장 전용 라커룸으로 안내한다.  홈 바에 있는 고급 양주나 포도주 중에서 마음대로 고르란다.  끝까지 별다른 부탁이 없어 신협의 두 회사 거래방침은 유지되었고, 필자 개인만 H 회사로 바꿨을 뿐이다.  후에 C 전무는 사장을 거쳐 그룹 부회장까지 승진한다.  필자의 LG에 대한 인식은 그렇게 완성되었다.

 첫째, 회사 내 비중의 경중에 따라 조금도 차별하지 않는 덕목이다.  의약분업을 둘러싼 다툼에서 의사들과 동조했다는 이유로 구강보건과를 없애고 생활체육과에 합병한 유시민 복지부장관을 기억한다(2007).  예산·사업규모도 중요하지만, 한 집단이 회사나 국민건강에 기여하는 위치·품위를 배려할 줄 모르는 ‘철부지 복수’는, 싸구려 재승덕박의 전형이다.  둘째, 회사임원인 골퍼와 캐디가 CEO의 별명을 부르며 함께 웃는 장면은, CEO에 대한 애정 내지 사내의 자유 분위기를 반영한다. 

 셋째, 고객접대를 맡은 작은 파트 관리자에게 안방열쇠를 맡기고 승진도 챙겨주는 CEO의 의지는, 요즈음 화제의 중심에 선 KAL 오너 가족의 소위 ‘갑 질’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작고한 구본무 회장의 부고기사, 즉 생전의 행적과 주위의 증언과 아름답게 떠난 모습에 대한 찬사에 한마디를 보태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 락희공업사(현 LG 화학)의 럭키치약은 우리나라 정품치약의 원조였고(1954년), 이는 60년대에 치과대학 예방치과 실습 단골 견학장소였던 유한치약, 그리고 한 결 같이 대한구강보건학회를 지원해준 애경유지의 2080치약으로 이어졌다.     





글: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