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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든 햇빛에 개나리 보실보실 피어나고..

[詩가 있는 풍경 34] 김광섭 시인의 '봄'


얼음을 등에 지고 가는 듯
봄은 멀다
먼저 든 햇빛에
개나리 보실보실 피어서
처음 노란 빛에 정이 들었다

차츰 지붕이 겨울 짐을 부릴 때도 되고
집 사이에 쌓은 울타리를 헐 때도 된다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가장 먼 데서부터 시작할 때도 온다

그래서 봄은 사랑의 계절
모든 距離가 풀리면서
멀리 간 것이 다 돌아온다
서운하게 갈라진 것까지도 돌아온다
모든 처음이 그 근원에서 돌아선다

나무는 나무로
꽃은 꽃으로
버들강아지는 버들강아지로
사람은 사람에게로
산은 산으로
죽은 것과 산 것이 서로 돌아서서
그 근원에서 相見禮를 이룬다

꽃은 짧은 가을 해에
어디쯤 갔다가
노루꼬리만큼 길어지는 봄해를 따라

몇 천리나 와서
오늘의 어느 주변에서
찬란한 꽃밭을 이루는가

다락에서 묵은 빨래뭉치도 풀려서
봄빛을 따라나와
산골짜기에서 겨울 산 뼈를 씻으며
졸졸 흐르는 시냇가로 간다



[회귀]

봄은 회귀의 계절입니다.
눈 녹고 얼음이 풀리면서 졸졸 계곡 물이 흐르고
그 생명수를 마시고 나무들이 깨어나 꽃을 피웁니다.
얼었던 길이 열리면 길 끝 아지랑이 너머로
떠났던 것들 슬밋슬밋 제자리인양 되돌아오고,
봄볕에 마음마저 녹아내려 서운하게 갈라진 모든 것
처음인양 근원에서 돌아섭니다.
봄은 그래서 마법의 계절입니다.
꽃은 꽃으로, 산은 산으로,
죽은 것과 산 것이 근원에서 교차해
일제히 깊은 숨을 토해냅니다.
그 축복같은 봄볕이 아까워 어머니는
겨우내 뭉쳐뒀던 빨래들을 꺼내 이고
뒷재 너머 시냇가로 향합니다.


봄을 이렇듯 근원적으로 노래한 시가 있을까요? '성북동 비둘기'로 유명한 김광섭 시인(1977년 작고)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주변 사람들을 평생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 낸 인문주의자입니다. 이 시 '봄'만해도 생명처럼 순환하는 자연과 그 속의 사람들을 봄볕처럼 따스하고 정갈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시인은 묻고 있군요. '꽃은 짧은 가을 해에 어디쯤 갔다가 노루꼬리만큼 길어지는 봄해를 따라 몇 천리나 와서 오늘 이렇듯 찬란한 꽃밭을 이루는가'고.

어느덧 3월입니다. 계절조차 잊고 쫓기듯 살아온 일상을 내려놓고, 시를 통해서나마 잠시 화사하게 깨어나는 생명의 봄을 맛보시기 바랍니다. 아래는 시집 성북동 비둘기(1969년)에 함께 실린 선생의 짧은 시 '저녁에' 전문.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두움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하나 나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