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슬픔을 위한 말, 슬픔에 봉사하는 말..

[시가 있는 풍경 33] 정희성 시인의 '이제 내 말은'


이제 내 말은
나의 슬픔도 그대의 설움도
잠재우지 않는다
바람이 바람을 잠재우지 않고
슬픔이 슬픔을 잠재우지 않는다
슬픔을 위한 말,
슬픔을 꾸미는 말,
모든 어둠의 하수인인
슬픔에 봉사하는 말,
그대와 나의 가장 깊은 곳에 회오리치던
슬픔의 찌꺼기인 눈물도
나의 것이 아니다 이제 내 말은
슬픔을 알아버렸다
가슴 쥐어뜯는 사랑도
이별도 알아버렸다
내 말은 허공을 떠돌지 않고
내 말은 죽지 꺾인 들새처럼
바다로 가서 혼자 울지 않는다
이제 내 말은
더 이상 슬퍼하지 않는다


[슬픔]

슬픔은 내재된 감정입니다.
인계철선 처럼 한가닥 질긴 끈을 밖으로 내밀고
무언가 건드리길 기다리는 민감한 정서입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슬픔에 깊이 동화됩니다.
누군가는 나이가 들어서 눈물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들면 그만큼 공감의 깊이가 깊어져서
그런 거라고 했는데.., 동의합니다.
말로서 잠재울 수 있는 슬픔은 애초에 없습니다.
이별을 알아 버렸건, 사랑을 알아 버렸건
슬픔은 그저 슬픔일 뿐입니다.
그래서 '이제 내 말은' 더 이상 슬퍼하지 않습니다.
그건 오롯이 슬픔 그 자체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정희성 시인은 이 시에서 말로 뭐든지 다 하고 마는 얄팍한 음풍농월의 풍토를 꾸짖습니다.
슬프할 때 슬프할 줄 알고, 분노할 때 분노할 줄 알라고 말합니다.

그는 그럼에도 시집 후기에서 '시대의 모순과 그 속에서 핍박받는 사람들의 슬픔에 관해 써왔지만, 그것이 진정한 신념과 희망과 용기를 주는데 이르지 못했음을 부끄럽게 여긴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런 시인의 이름을 얼마전 KTX 강릉역에서 열린 '평화 시 · 노래 콘서트' 소식에서 우연히 접했습니다.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임에도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 중이시더군요. 반가운 마음에 시집부터 뽑아 들었습니다.  아래는 시집 '저문 강에 삽을 씻고'(1978년)에 함께 실린 짧은 시 '숲' 전문.   


숲에 가 보니 나무들은
제가끔 서 있더군
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
숲이었어
광화문 지하도를 지나며
숱한 사람들이 만나지만
왜 그들은 숲이 아닌가
이 메마른 땅을 외롭게 지나치며
낯선 그대와 만날 때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