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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직접민주주의, 혁명인가?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160>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의 인구는 한국 기초 자치단체 정도요, 우리 GNP가 해방 당시의 5백배라는 점으로 미루어보면, 총생산은 몇 천분의 일도 못 되었을 것이다.

 인구 2만의 도시국가를 가정해보자.  절반은 생업과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노예요, 다시 그 절반은 참정권이 없는 여성이다.  평균수명도 극히 짧아서(노인이 드물다) 미성년자를 빼면 광장에 나올 남정네는 2, 3천 명 내외이니, 정치에 관심이 없거나 내 일이 더 바쁜 사람, 여행 또는 와병 중인 남자를 빼면 고작 천명 남짓이 남는다. 

 생활양식과 산업구조가 단순하여 이익 충돌이나 분쟁 소지가 적고, 설령 있어도 전통과 관습에 따라, 또는 원로의 중재로 간단히 해결된다.  행정수요와 예산형편으로 보아 상비군이나 상근 관료조직을 운영하기도 어렵고 만들 필요도 없다.  일정기간 관리운영을 맡길 심부름꾼(지도자) 선출과 중대한 경제문제의 결정 또는 전쟁 따위의 외교적 결단이 아니고는 별로 토론하고 의결할 일이 없다.  이상이 광장의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했던 이유다.  노예제도를 포함하여 이런 이유들을 뒤집어보면, 현행 간접민주주의의 당위성이 명백해진다.


   국가규모가 크고 시민 의식이 강해진 로마공화정에서 간접민주주의의 원형으로 나타난 원로원은 상류층으로 구성되었고, 그마저 제국이 되자 황제의 권한에 대하여 무력해졌다.  5현제 시대 로마제국 권과 중국 권의 인구가 비슷하여 합계 1억쯤으로 추산하지만, 당시 동서양간의 소통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중세암흑기 이후 인권에 눈을 뜬 영국사회, 르네상스·종교개혁·계약론을 거쳐 중상주의와 시민계급의 형성, 이어서 산업혁명·프랑스 대혁명을 통하여 드디어 시민에 의한 간접 민주주의의 꽃인 의회가 탄생한다.  “세금이 있는 곳에 ‘대표’가 있다.”는 말이 웅변하듯 국민이 부담하는 세금의 산출·징수·집행 전 과정을 직접 감시해야하지만, 경제적·기술적·물리적인 이유로 사실상 불가능한 까닭에, 시민이 뽑은 대표에게 이를 위임하는 것이다. 

 미국 독립을 전후로 자유민주주의가 더욱 발전하면서, 대표선출도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라는 4대원칙이 정립된다.  인민을 최대로 받든다면서 실제로는 일당독재체제로 억압하는 공산국가들조차, 명목상 의회(북한 최고인민회의나 중국의 전인대)를 만들어 간접민주주의로 위장(僞裝)하지 않는가?  80억 인구가 하나가 되어 시시각각 격렬하게 다투고 경쟁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한가한 직접민주주의는 극히 제한적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다(선거, 예외적인 국민투표).


   촛불은 어둠을 밝히는 상징성만으로도 한 폭의 그림이다.  2016년 후반 시작된 정치적 격변은, “촛불시위가 이끌어낸 국회 탄핵이 헌재 판결을 거쳐 조기대선”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므로 촛불혁명이란 잘못, 과장된 이름이다.  시위로(Candle March) 직접 정권을 획득했다면 폭동(Candle Putsch)이 되고, 혁명(Candle Revolution) 이라면 잔여임기 일 년을 못 참고 조급하게 벌어진 헌정중단이다.  비록 뜻이 순수하다 해도, 시위대의 ‘명문화한 합의’를 계량하고 수렴하는 절차나 거기에 대한 ‘전 국민적 검증’이 빠졌다면, 결과적으로 민주주의발전에 역주행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문대통령이 우방국을 순방하며 ‘촛불혁명 대통령*’을 자랑했을 때 달가운 시선을 받지 못한 것이다.  문화혁명이라는 위장 직접민주주의의 희생자요, 자발적인 천안문 시위에 가슴이 철렁했던 중국공산당 지도자 시 주석에게 자랑을 자제한 것은 정말로 잘했다.   촛불시위에 진정으로 보답하려면, 이처럼 겸손한 자세로 정상적인 ‘자유민주주의의 법치’로 복귀하여, 잘못된 제도의 개선과 어려운 경제의 회복에 전력투구해야할 것이다.

                                             

* ‘탄핵 결과 정권교체에 성공한 대통령’이 가장 정확한 표현이요, 모든 책임은 스스로를 바로잡지 못한 채 방어에 실패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있을 것이다. 
      




글: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