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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패권국가의 자격 1 : 땅 거지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150>


    횡단보도는 검은 아스팔트와 흰 페인트가 차례로 이어지는 얼룩무늬라서, 영국인들은 Zebra-crossing이라고 부른다.  무언의 ‘약속’에 따라 운전자는 보행자가 지날 때까지 참고 기다린다.  단 아무 데서나 무단 횡단하면 절대로 봐주지 않는다. 

 “약속위반이니 목숨을 걸고(at your own rlsk) 건너라!”는 식이다.  더블린의 필수순례코스인 기네스 맥주공장.  7층 스카이라운지에서 구수한 흑맥주 한 파인트를 받아, 시내를 둘러보며 마시는 것은 멋진 경험이다.  몇 블록에 걸친 공장 부지를 년 45파운드에 ‘9천 년 간’ 임대계약 했다고 한다(1759).  1층 바닥에 있는 작은 유리창으로 계약서가 보인다.  튜더왕조가 엘리자베스 1세로 끝나자,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6세가 편지를 보낸다.  옛날 헨리 8세가, “후손이 없으면 왕위를 물려주겠네.”라고 ‘약속’했다는 주장이다.  결국 그는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로 즉위하여 스튜어트왕조의 시조가 된다. 

 처칠 수상의 할아버지는 스페인 계승전쟁(1702~1714) 때 큰 공을 세워 말보로 공작 서품을 받은 존 처칠의 7대 손이다.  그때 하사받은 광활한 영지(領地)에 매긴 세금이, 지금도 변함없이 1년에 10파운드라던가.  하늘이 두 쪽 나도 “계약은 물론 구두약속”까지 반드시 지키는 전통, 이것은 가공할 힘이다.


   찰스 1세의 전제정치에 청교도들이 봉기하여 크롬웰의 공화정이 실시되고, 찰스 1세는 반역죄로 처형당한다(1649).  그러나 지나친 도덕정치는 어떤 독재보다 잔인하다는 말을 증명하듯, 청교도의 공화정은 끝내 민심을 잃어서 자멸한다.  왕정을 복고한(1660) 찰스 2세는 크롬웰을 무덤에서 파내어 부관참시하고, 매일 바라볼 수 있도록 머리를 창문 밖에 매단다.  혈통이 끊어지면 네덜란드·프랑스·하노버에서 핏줄을 모셔다가 대를 이으면서도, 왕을 죽인 시해(弑害)자는 땅 끝까지 추격하여 응징한다. 

 계약은 반드시 지키는 “신뢰와 약속”, 시해 자(King Slayer)는 절대로 살려두지 않는다는 “엄정한 법질서”, 이 두 가지가 대영제국의 영광을 실현·유지한 기둥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5대양 6대주를 몽땅 아우른 팍스 브리타니카 제국에서, 국내의 2등 3등 국민은 “Unfair!”를 부르짖을 이유도 여유도 없었으리라.


   양차대전 이후 대영제국에 해가 기울고, 이어지는 20세기 후반은 미·소 초강대국이 힘을 겨룬 냉전체제인데, 사실은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였다.  산업혁명의 선두주자 대영제국은 값싼 원자재와 노동력과 넓은 시장으로 만족하는 식민지 경영이 핵심이었다.  미국은 풍부한 자원과 막강한 공업 생산력으로, 자본주의 체제와 자유무역의 보장 이상을 욕심내지 않았다.  두 나라의 공통점은 막강한 실력우위를 바탕으로, ‘영토적 야심’과는 거리를 두었다는 점이다. 

 ‘영토의 아귀(餓鬼)’ 일본은, 16세기 말에 아시아 평화를 유린했고, 20세기에는 세계평화를 위협하다가 철퇴를 맞았다. 세계 1위의 인구와 일본·한국에게서 1등 따라 잡기 과외수업(Fast Follower)을 열심히 받은 중국은, G2로 성장하여 이제 세계패권(Pax Sinica?)을 넘보고 있으나, 아직은 아니다.  첫째 중국의 기술력은 미국·일본을 베낀 짝퉁이요, 제품은 값싼 노동력을 이용한 싸구려다.  다른 국가들로부터 존경을 받지는 못한다.

 둘째 공산당의 일당독재 체제는, 국민의 자발적인 동력을(Dynamism) 유발할 한계에 이르렀다.  셋째 강한 상대에는 벌벌 기면서 약한 나라에게 무법천지로 분풀이하는 동네깡패(Bully) 국가는, 보고 배우거나 따르고 싶은 롤 모델로서 매력이 전혀 없다.

 넷째 중국의 접경국가 중에 성한 나라가 없다.  티벳은 소화가 끝났고, 남지나해 암초에 철근을 박아 인공 섬을 만들고, 이 일대가 모두 내 땅이란다.  영토 확장에 집착하여 인접국을 위협하는 시대착오의 미개국은, 아직 리더가 될 자격이 없다.





글: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