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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삼 대 불가사의 2 : 현미와 백미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147>


   현재의 달라 가치를 7, 80년대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GNP가 3-5천불을 넘어갈 때 식료품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식재료의 질(육류 비율)에도 변화가 온다고 한다.

 다시 소득이 한 단계 더 올라가면 비만과 혈압에 신경을 쓰고, 양보다 질, 특히 맛을 즐기는 식도락 수준으로 올라선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가파르게 높아지면서 고령인구시대를 맞이하였다.  백세시대를 바라보며 이제는 암은 물론이요, 고혈압·당뇨병 같은 ‘침묵의 살인자’, 즉 성인병을 두려워한다.  그리하여 TV 채널은 소위 ‘먹방(먹을거리 방송)’이 점령하고, 신문·잡지는 건강식품 심층취재가 대세다.

 신종 직업 ‘방송인’의 지위에 셰프(요리사)가 대거 진출한지 오래요, 내과·가정의학과의사는 물론, 영양사와 약사 한의사가 패널을 장악하여 인기인(Celebrity)이 되었다.  “과연 전문직업인이 맞아?” 할 만큼 피차에 아슬아슬하게 비전공 영역을 넘나들면서, 구수한 입담을 풀어낸다.  평균수명 30 안팎이던 4백여 년 전 의학백과전서인 ‘동의보감’이, 음식과 환경이 변하고 고령화된 현대인의 암이나 성인병에, 만능해결사로 인용되는 현상도 또 하나의 ‘불가사의’다.


   몸에 좋다면 남아나는 것이 없는 나라에 현미 열풍은 시간문제였다.  성인병의 주범인 3백(三白) 즉 흰쌀 밀가루 백설탕 중, 주식인 백미가 공공의 적이 된 것이다.

 현미는 벼를 3분도 이하로 겉껍질만 벗긴 쌀이다.  몇 시간씩 물에 불려도 압력솥(옛날 묵직한 가마솥 대신)이 필요하고, 촉감이 까칠하여 치아가 닳도록 서른 번 넘게 꼭꼭 씹어도, 위장 약한 사람은 소화가 잘 안 된다.  백미는 칼로리 덩어리일 뿐 영양가가 없고, 현미에는 미네랄과 비타민이 풍부하다 한들, 손 많이 가고 먹기 힘들며 흡수가 잘 안되면 무슨 소용인가?  춘궁기는 연례행사요 하루 세끼 배불리 먹기 어렵던 조상님 네들이, 도정(搗精)시설도 원시적인 당시 하얀 쌀밥을 드셨을까?

 수공 많이 들고 벼 한 섬 찧어야 겨우 쌀 한 가마니 나오는 백미는 양반지주님들 몫이요, 보통 백성은 현미나 5-7분도 쌀, 아니면 잡곡이 주식이었으리라.  어쩌다 노인네가 앓아누우셨을 때, 귀한 11분도 백미를 구해다가 흰 쌀밥 한 공기 짓거나 뽀얀 미음을 쑤어 드리면, 툭툭 자리 털고 일어나셨다지 않는가?  새하얀 백미가 일반화 된 것은, 아니꼽지만 신식 정미소가 대량 보급된 일제치하였다.
 
   내 건강을 지켜주려는 아내의 속내는 잘 알지만, 현미밥만은 한사코 거부해왔다. 

 요즘 화제인 ‘현미괴담’을 믿어서가 아니다.  남아있는 껍질에 중금속이나 잔류 농약이 있다면, 푹 불려서 박박 문지르면 그뿐이며, 피트산(phytic acid) 독성 따위는 믿지 않는다.  다만 노동력과 전기료가 더 들고 최종 소출량도 훨씬 적은 백미보다, 조리가 어렵고 치아·치주조직에 부담을 주며 밥맛은 물론 소화도 애매한 현미가, 단지 ‘건강식품’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더 비싸게 팔리는 한국식 ‘불가사의’는 정말로 얄밉지 않은가?  현미 대신 백미에 좁쌀과 수수를 섞어 밥을 지으면 된다. 

 보온 전기밥솥에서 1박2일을 묵어도, 잡곡밥 특유의 군내가 없고 식감도 살아있다.

 정 불안하면 B콤(비타민 B Complex)을 한 알 먹던지.  재래시장에 널린 신선한 상치 오이 아삭이 풋고추를 사다가 된장에 찍어먹어도 되고, 톳나물 미나리에 노란 배추 속을 썰어 넣은 물김치는 하룻밤이면 익는다.  살짝 절인 무채를 고춧가루와 새우젓 국물 몇 방울에 버무린 생채무침음 또 어떤가?  몇 대에 걸쳐 전수를 받고 수련한 셰프의 내공이나, 적당히 만들어낸 건강 신화에 무임승차하여, 고부가가치를 꾀하는 상술에 쉽게 넘어가는 일은 실로 ‘불가사의’다.  그리고, 자고로 음식이란 맛나고 기분 좋게 먹어야 피가 되고 살로 가는 법이다.





글: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