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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삼 대 불가사의(不可思議) 1 : 페킹 덕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146>


   신흥초등 4학년(1952) 우리 반에는 청소당번 외에도 또 하나의 일거리가 있었다. 

 학교 뒤에 흐르는 대동 천을 따라 메뚜기와 개구리를 잡으러 다녔다.  여름 방학에도 돌아가며 선생님 댁 오리를 먹여 살린 노동력 착취(?)였는데, 사실 나눠주시는 알사탕보다 사냥(?) 자체가 즐거운 놀이였다.  물자가 귀한 전쟁 중에 달걀보다 큰 오리 알과 고기는 꽤 잘 팔려, 교사의 박봉에 오리 사육은 짭짤한 부업이었으리라. 

 건강보험이 확대된 1980년대 중반에 각 구마다 조합이 있었다.  이사장은 은퇴한 여당국회의원 선거참모요, 의사 다섯쯤이 무보수 이사였다.  전산화가 이루어지기 전이니까 예산의 30%가 인건비요, 월례회 겸 점심식사는 흔히 오리 로스구이였다. 

 느끼함을 잡으려고 겨자와 부추절임을 곁들여도 별로 당기지 않지만, 경비절약을 위한 선택이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때만 해도 오리고기 값이 착했으니까.


   금수저도 아니요 인상도 별로인 닉슨 대통령은, 외교에 집중하여 취임 다음해부터 핑퐁외교로 군불을 때더니, 드디어 베이징으로 날아가 꽉 막혀있던 중·미관계(Sino-American Relation: 1972)를 풀었다.  마오가 대접한 페킹덕은 명나라 주원장 때부터 명성이 높던 궁중 요리로, 이 회담 이후 세계적인 유명세를 탔다.  약빠른 일본은 그해에 중국을 승인하고, 한국은 유신과 5, 6공을 거쳐, YS 때 비로소 중국과 수교한다(1992. 8).  미국과 UN 등 세계적인 추세를 거스를 수 없어 한국이 먼저 대만을 배신하기는 했지만, 단교 후 대만이 한국을 헐뜯고 해친 행위는, 최근 사드에 대한 시진핑의 반응보다 더 험악하였다. 

 중화사상은 이념을 포함하여 모든 것에 우선한다.  대륙주의든 해양주의든 진보든 보수든 가릴 것 없이, 한국은 폭력과 인권탄압의 나라, 미개한 중국에 대하여 환상을 버려야 한다.  어쨌든 중국과 소통이 시작되자, 한국에도 페킹 덕에 대한 정보가 쏟아지고, 오리고기가 성인병에 좋다는 신화(myth)까지 가세하여 전문음식점이 잇달아 문을 연다.  소나 돼지보다(Beef & Pork) 건강식품일지는 모르나, 오리를 마치 성인병 ‘치료제’로 착각하는 한국 특유의 ‘쏠림 현상’이 시작된 것이다.  때마침 오리털 파카(패딩의 원조)가 국내외로 유행하면서, 식재료의 ‘무진장’ 공급에도 불구하고, 오리가 닭보다도 비싼 ‘불가사의’한 현상이 벌어졌다.  물론 유황이니 한방이라는 접두사를 앞에 달기는 했지만...


   20여 년 전 어느 날 일행 십여 명이 교외 오리집에 갔다.  필자는 구석 테이블에서 값싼(?) 삼겹살을 따로 구어 먹는데, 십분  쯤 지나니까 한명 두 명 내 쪽으로 넘어온다.  결국 삼겹살 10인분을 추가했고, 저 쪽 상 위에는 굽다 만 오리고기가 반쯤은 남았다.  특별 사육한 귀한 오리를 특별 제작한 전통 화덕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궁중요리법으로 조리하여, 파삭한 껍질부터 세 가지 코스 요리로 만든 페킹 덕은 비싸야 마땅하다.  다만 단순하게 요리하는 값싼 요리가 대종을 이루고, 고급 음식점은 드문드문해야 구색이 맞는다. 

 가금(家禽: poultry)요리는 본래 서민의 식재료, 빈자의 음식 아니던가?  우후죽순 생겨난 전문점이 IMF를 거치면서 많이 정비되어, 이제 명실 공히 실력 있는 식당만 살아남았고,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착한 치킨가게가 늘어난 것은 반가운 일이다.  Myth란 신화 즉 지어낸 이야기다.  귀에 솔깃한 가짜 팩트는, 높은 수익으로 단기간에 떼돈을 번 다음, 평생 놀고먹겠다는 안이한 생각을 파고든다.  우리의 어리석은 쏠림현상부터 고치지 않는 한, 5 대를 물려받은 이탈리아 파스타 집이나, 3백년 된 일본식 우동가게는 꿈도 꿀 수가 없다.

 마음이 여유로운 국민, 안정된 국가를 향한 첫걸음을 떼지 못한다.





글: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