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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무·정책

물밑 잠룡들은 왜 협회장이 되려는 걸까?

[기획]민선집행부의 역할과 과제

지난 3월 28일의 1차 개표 취재는 기다림의 연속이었습니다. 8시 온라인 투표 마감과 동시에 개표에 들어갈 것으로 예고 돼 일찌감치 기자대기실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지만, '바뀐 전화번호'라는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선관위는 선거인명부열람 기간에 잘못된 정보를 수정하지 않은 본인들의 책임도 있는 만큼 이미 완료된 1차는 그대로 개표를 진행하고, 2차 투표 때나 수정정보를 반영하자는 의견이었으나 각기 이해가 다를 수밖에 없는 후보들은 좀 채 의견을 모으지 못했습니다. 밖에서는 후보대기실 문을 여닫는 소리와 함께 간간히 고함소리가 들려오기도 했지만, 선관위가 차지한 대회의실의 문은 좀 채 열릴 줄을 몰랐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협회장이 되고 싶은 걸까?' 하는 원초적인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왜 협회장이 되려는 걸까요? 기호 1번과 2번은 직전 선거에서 이미 낙선의 아픔을 겪은 분들입니다. 3년을 기다렸다가 다시 도전케 하는 그 힘의 정체는 대체 뭘까요.

아시다시피 협회장은, 더구나 요즘 협회장은 그다지 매력이 없습니다. 전전임 회장은 임기가 끝나고도 3년이 지난 지금까지 각종 송사에 시달리고 있고, 최남섭 전 회장 역시 마음과는 다르게 임기 내내 이런저런 구설에 시달리다가 결국 '잃어버린 3년'이니 하는 원망까지 듣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 전임들의 파행을 지켜보고도 협회장을 하겠다는 사람은 넘치고 넘칩니다. 선거 때가 되면 소위 잠룡이라는 이름들이 신문에 오르내리고, 마음은 있으되 결단력이 모자라는 사람들이 먼저 꼬리를 내리고 나면, 다음엔 결단력까진 갖췄으나 선거를 치를 동력을 얻지 못한 사람들이 또 한차례 정리가 됩니다. 그러므로 후보의 신분에까지 오른 분들은 그 자체로 벌써 대단하다고 봐야 합니다.



그 대단한 분들이 협회장이 되겠다고 목을 매니 무슨 대단한 자리인가 싶겠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습니다. 협회장은 협회회관 3층에 부속실이 딸린 조그만 방 한 칸을 사무실로 사용합니다. 1500만 원 가량의 월급을 받고, 비서와 운전기사에 에쿠스 차량이 제공됩니다. 협회 사무처와 치의신보, 치과의료정책연구소의 사업 및 예산집행권과 소속 60여명 직원들의 인사권을 행사하며, 대외적으로 대한치과의사협회를 대표합니다.

외양은 그럴듯할지 모르지만 디테일에선 많은 함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선 취임 후 세 달 안에 치과를 완전 매각해야 합니다. 겸직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의미인데, 결국 3년 후 돌아갈 자리가 없어지는 거지요. 조각도 문제입니다. 특히 선거 과정에서 외부의 동력을 끌어온 경우 도움을 준 측이 노골적으로 자리를 요구합니다. 최 전 협회장은 3년 전 핵심 3개 위원회 가운데 재무와 공보를 넘겨줬고, 이 때문에 집행부는 임기 내내 불화를 겪었습니다.

넉넉지 않은 살림살이도 협회장의 짐입니다. 치협은 매년 여름이면 쓸 돈이 부족해집니다. 이때부터 운영기금을 끌어다 사용하고 나중에 갚는 방식으로 고정비를 충당하므로 돈이 드는 사업은 대체로 자제하는 분위기가 되는 거지요. 그러므로 지부를 채근해서 중앙회비를 걷고, 사업에 우선순위를 매기는 작업도 결국 협회장의 일이 됩니다. 지난 집행부의 경우 과도한 법무비용 부담으로 하궁기(夏窮期)를 나기가 더욱 힘들었다는군요.

인사권 또한 협회장의 권한이자 부담입니다. 처음에야 휘두르고 싶은 생각이 왜 없겠습니까마는 직원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알아갈수록 손에 쥔 칼자루는 점점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갑니다.

외부에서도 치협 회장은 비중이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보건복지부도 국회도 건보공단도 의협의 눈치 살피기에 바쁠뿐 치협은 대체로 편한 상대입니다. 치협회장이 의약단체협의회의 회장을 맡고 있긴 하지만 그건 의료계 내부사정에 따른 역할일 뿐, 밖에서 매기는 비중은 여전히 의협이 압도적입니다.

이 말은 협회장의 소신이나 약속이 외력에 의해 변형될 확률이 그만큼 높아진다는 의미입니다. '하기로 해놓고 왜 그렇게 하지 않느냐'고 따지는 건 그러므로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 한가지만 놓고 보면, 누가 협회장이 되건 결과는 비슷했을 테니까요. 이 경우에도 여론은 어김없이 그 책임을 협회장에게 묻습니다.
내부 문제도 마찬가집니다. 어떤 후보는 '회원이 원하는 전문의제를 하겠다'고 큰소리쳤지만, 그 '회원이 원하는 전문의' 때문에 50년이 넘도록 치과계가 이렇게 다투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걸 무슨 수로...



그럼에도 협회장이 되고 싶은 이유는 물론 따로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를테면 평생을 몸담을 동업자 집단의 수장이 된다는 자체에서 의미를 찾을 수도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명예만을 바라고 뛰어들기엔 그 길은 너무나 멀고 험합니다. 6년 전만 해도 201명 대의원들과 대면소통만 잘 해도 부쩍부쩍 당선확률을 높여갈 수 있었습니다. 부동층에서 2명만 내편으로 끌어들여도 금방 기대치를 2%나 높일 수 있었으니까요.

선거인단제가 되고부터는 선거운동의 범위가 7배나 넓어졌습니다. 일일이 유권자를 대면하기 힘들어진 후보들은 전화를 선거운동의 주 도구로 활용했습니다. 후보 자신은 물론 운동원들까지 끌어 댈 수 있는 라인을 모두 끌어내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고, 덕분에 유권자들은 선거운동기간 내내 각 캠프의 전화공세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직접선거가 되고 보니 선거운동의 범위는 다시 9배나 늘어났습니다. 후보들과 유권자들 사이가 그만큼 더 멀어졌다는 의미겠죠. 그래서 이번엔 미디어가 선거운동의 전면에 나섰습니다. 이메일과 SNS가 동원되고, 치과계 전문지들이 유례없는 대리전을 치렀습니다. 그러다 보니 부작용도 적지 않았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각자의 주장들이 SNS와 지면에 난무했고, 후보들 또한 잘못이 드러나도 '우선 막고 보자' 식의 되치기 반박자료로 혐의를 무마하려 들곤 했습니다. 정보는 많아졌지만, 유권자들이 믿을만한 양질의 정보는 오히려 줄어든 셈이지요.

그리고는 급기야 유권자 1천명이 선거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태가 빚어진 겁니다. 이날 선관위의 끈질긴 설득 끝에 마지막으로 기호 2번 김철수 후보 측이 개표에 동의했습니다. 밤 11시경 기자들이 우르르 5층 개표장으로 몰려갔고, 곧 선관위가 준비한 현황판에 3명 후보들의 성적표가 나붙었습니다. 기호 1번 이상훈 후보 3001표, 기호 2번 김철수 후보 3097표, 기호 3번 박영섭 후보 3021표. 

잠시 개표장에 침묵이 흘렀고, 캠프 사람들의 얼굴엔 짧은 순간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습니다. 이어 사람들은 저마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낮은 목소리로 통화를 하거나 어디론가 부지런히 카톡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두 후보 간의 최종 당락은 1주일 뒤인 4월 4일 밤 10시 40분경 판가름이 났습니다. 이날은 박영섭 후보가 재투표를 요구하며 동의를 미뤄 개표가 지연됐는데요, 박 후보 측은 결선투표 공고 이후 (기사로)나온 이상훈 후보의 김철수 후보 지지 선언이 명백히 선거규정을 위반한 것임에도 선관위가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습니다.

이날 박 후보는 ‘조사 후 문제가 드러나면 실제적인 제재를 가하겠다’는 선관위의 약속을 받고서야 개표에 동의했고, 예상대로 김철수 후보가 당선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두 후보 간의 표 차이는 455표, 컷 탈락한 이상훈 후보의 표를 6:4로 나눠가진 결과입니다. 

당선이 선언되자 꽃다발을 목에 건 김철수 후보가 단상에 올라 두 손을 높이 치켜 올렸습니다. 상기된 그의 표정엔 온갖 어려움을 헤치고 마침내 목표에 도달한 성취의 감격이 역력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당선자는 알아야 합니다, 정작 고행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