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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하나 품속에 간직하라, 차고 단단한..

[詩가 있는 풍경 27] 이종욱 시인의 '돌'


화산의 입안에서 지글지글 끓어오르다가
우리와 더불어 닳고 있다
장마에 씻겼다가 햇볕에 마르다가
천둥 번개 삼키고 심장이 튼튼해졌다

돌 하나 품속에 간직하라
차고 단단한 목소리 하나
차고 단단한 슬픔 하나
꼿꼿이 자랄 것이다
한가닥 마른 번개 번쩍일 것이다
영생불로의 바람 한자락 펄럭일 것이다
곧게 내려 꽂히는 햇살 한보자기 풀어놓을 것이다

돌을 던져라
우리의 가장 부끄러운 곳을 향해
거짓된 침묵의 심장을 향해
돌은 돌아온다
빛은 이미 오래 전에 어둠을 꿰뚫었으나
아직껏 거두어가지 못하고 있다
어둠 속에 불끈 버티고 선 돌
뼈와 꽃도 숨기고 두 눈 부릅뜬 돌

돌 하나 품속에 간직하라
차고 단단한 목소리 하나
돌을 던져라
우리의 가장 부끄러운 곳을 향해



[분노]

가끔 온몸을 떨게 하는 거친 분노와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대의명분이 아니라, 개인적이고 사소한 일에서 이런 분노는 더욱 또렷해집니다.
그리곤 곧 반성하게 됩니다. '난 왜 작은 일에만 분노하는가'고.
화가 날 때마다 차고 단단한 목소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화가 날 때마다 돌을 던질 수는 더욱 없습니다.
그렇지만 품속에 던질 돌하나, 목소리 하나쯤
간직할 필요가 있다는데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아직껏 거두어가지 못한 어둠 속에 뼈와 꽃 그리고 돌 하나 숨기고
던질 곳을 향해 두 눈 부릅뜨는 강한 상상만으로도
이내 햇살 한보자기 풀어놓은 것처럼
마음이 평온해질 것 같아서 입니다.

이종욱 시인은 신동아 기자로 있다가 75년 해직된 후 '창작과비평'를 통해 등단하고,
그곳 편집부에서도 잠시 일했습니다. 시인의 시들은 양처럼 순한 듯하다가 때로는 사나운 짐승처럼 거칠어지기도 하는데, 평론가들은 이를 시적 정직성의 소산이라 해석합니다. 나른하고 안온한 서정의 틀 속에 웅크린 시인들에게는 일종의 경고가 되는 셈이지요.
이 시 또한 바른 삶에 대한 강직성을 거칠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부끄러움과의 타협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미일겁니다. 이 시 '돌'은 81년에 펴낸 그의 시집 '꽃샘추위'에 들어 있습니다.

다음은 같은 시집에 실린 '만년필' 전문.  


그래, 잉크를 깨끗한 잉크를 넣어주마
그래, 너의 푸른 피를 닮은 시를 쓰마
그래, 하늘의 뜻을 푸르게 푸르게 펼치마
그래, 너와 함께 긴 밤도 짧게 불밝히며 세우마
그래, 가냘픈 힘줄이나마 곳곳의 진창에 흙을 퍼 나르마
그래,서러운 비가 와서 해가 없는 날 너를 찾으마
그래, 젖은 가슴 모두 양지바른 처마 밑에 데려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