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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밥 먹는 데도 좌파, 우파가 있나요?

[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85>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 앞에서는 이념이고 사상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입니다.

특히나 식욕과 성욕 문제에서는 좌우를 가리질 않는데, 성추문의 경우에서는 각자의 이념적 스탠스나 학력,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다 똑같은 '벌거벗은 원숭이'가 되곤 합니다.

먹는 문제에서도 좌우는 다른 듯 같고, 같은 듯 다릅니다.
기독교에서 언급하는 일곱 가지 대죄(Seven)에서 먹는 것과 관련된 것을 굳이 꼽으라면 '폭식(Gluttony)'와 '탐욕(Greed)'입니다.


그런데 탐욕과 폭식은 곧 '미식' 혹은 '탐식'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닐까 합니다만, 이는 성경의 현대적 해석에 해당되므로 제 주제를 넘게 됩니다. 어쨌든 현대에서는 '미식행위‘가 더 이상은 죄악은 아니며 또, 맛있는 걸 먹는 문제 앞에서는 '이념' 같은 골칫덩어리가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될 겁니다.


헌데, 네이버와 같은 포털에서 뭔 식당이나 음식 스토리를 찾다보면 몇 가지 재미있는 점을 보게 됩니다.
음식 블로그의 경우, 글을 길고 맛깔나게 쓰는 사람들은 대개 진보적인 성향을 보입니다. 게다가 상당한 음식 관련 내공이 있습니다. 그러나 게시판 우측이나 좌측에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문구나 그림을 올려놓아 글쓴이의 성향을 짐작하게 합니다. 특정인을 추모한다거나 촛불 그림이 올라가 있는 경우도 있고, 누구를 노골적으로 지지하거나 반대한다고 쓴 경우도 있습니다. 좋은 음식 이야기와 맛난 음식 스토리와는 어울리지도 않고 조금 생뚱맞기는 하지만 뭐 그렇다고 불편하지는 않습니다.


우파들의 블로그는 일단 사진이 글을 압도합니다. 사진은 엄청나게 잘 찍지만, 음식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부족한 경우가 많지요. 글 내용에서는 정치적 구호나 편향성을 찾으려야 찾을 수가 없습니다. 기본적인 배고픔을 해소하기 위해 음식 앞에서는 좌우가 없어야 하지만, 이왕이면 맛있고 근사한 음식을 선택하는 행위는 우파 자본주의의 근간이랄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진보좌파 성향의 사람이 지나치게 럭셔리한 음식만을 찾는 것도 약간 모순되긴 합니다. 그래서 진보적 미식가들은 순수 토속 음식, 우리 민족성이 한껏 배어있는 음식, 유기농 음식, 신토불이 음식 등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분명 소망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합리성만큼은 담보되어야겠지요.

희대의 달변가이자 역사문화 저술가인 유홍준 교수도 좌파이면서도 향토 음식에 관해서는 일가견이 있지요. 그의 답사기를 읽다 보면 향토 음식에 대해 언급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하지만 공전의 히트작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권에서 어느 지역을 이야기 하면서 그곳 출신의 한 투사를 모르는 사람은 세상을 너무 쉽게 살아온 사람이라고 단언을 할 정도로 이념적 지향도 뚜렷하지요.


얼마 전에 작고하신 시인 송수권 선생도 그가 펴낸 맛집 책 한구석에 지리산 철쭉을 보러 가면서 계곡 곳곳에서 쓰러져간 빨치산들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철쭉이나 진달래를 볼 자격이 없다고 했던가요?

하지만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떻습니까?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라는데 그분들에게 한 수를 배우는데 좌우가 뭔 걸림돌이 되겠습니까?

  

어느 신문 논설위원의 칼럼에 이런 구절이 있더군요.

‘우리 지식사회의 문제 중 하나는 '진영(陣營) 논리'가 '과학 논리'를 삼켜버린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4대강에 대해 무슨 입장인지 알면 그가 원자력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광우병이나 케이블카에 대해서는 뭐라 말할지 거의 정확하게 짐작할 수 있다. '어느 쪽이 유리해지나'라는 이해(利害)를 따져 진영의 논리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그런 자판기식(式) 논리로는 현상 전체가 눈에 들어올 수 없고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방향과 각도에서만 보는 '선택적 취사(取捨)'의 왜곡에 빠지게 된다. 나도 간혹 이런 오류에 빠지고 있진 않은지, 말하기 조심스러운 부분이긴 하다.’

이를 원용하여,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준다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라는 브리에 샤바렝의 말 역시 유효하겠지요.


어느 일본인이 쓴 책 중에 ‘음식좌파, 음식우파’라는 책이 있습니다.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습니다. 책 내용을 읽어보면 좌파들이 먹는 것에 훨씬 더 지출이 크고 귀한 것을 찾고, 저렴하고 대중적이고 쉽게 구할 수 있고 몸에 나쁜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오히려 우파라는군요. 이것이 바로 음식좌파, 우파의 아이러니입니다.

최근에 베스트셀러가 된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라는 책의 저자인 일본 사람 부부는 시골에 살면서 천연균을 채취하여 자연 발효한 빵을 구워 파는데 겉으로 보면 아름답고 소박한 이야기 같지만, 실제 그는 골수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일상에서 자본론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정작 그 비싼 빵을 사러 차를 몰고 오는 사람들은 죄다 동경의 최상류층들이라는 것이죠.

'음식좌파, 음식우파'라는 책에서도 이런 모순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실제 유기농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일본의 경우 ‘단카이 세대’ 중에서 혁명에서 실패하자 시골로 들어가 집단생활을 하며 자급자족 유기농생활을 하였습니다.(실제 우리나라도 그런 움직임을 보이는 경우도 있고요) 미국이나 서구에서도 학생혁명이나 월남전 반대를 계기로 이런 운동이 시작되었지요. 그러나 실제 그 유기농산물을 사먹을 수 있는 사람은 우파부자들이었습니다. 게다가 인구는 기하급수로 늘어 2050년대에는 90억 명을 바라보는데 이들을 먹여 살리려면 열대우림 몇 개씩을 매년 파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유기농을 포기하고 GMO 음식을 먹든지 해야 합니다. 실제 GMO 음식 때문에 살충제 사용이 매년 수만 톤씩 줄어든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음식우파가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산업사회에서 대량생산한 저렴한 도시락들이 저소득층의 생활에 도움을 주었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저자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서로 균형을 맞추자는 이야기지요.

음식좌파와 음식우파도 이제 소통을 해야 할 때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이런 류의 책을 잘 냅니다.



지나치게 도식적이긴 하지만, 관심을 둘 만 합니다.



 '지산지소'란 지역에서 생산한 것을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것을 말합니다.





 

 

 

글: 석창인

에스엔유치과병원 대표원장

음식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