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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묵 칼럼

사고의 주관과 객관 그리고 오류(誤謬)

[최상묵의 NON TROPPO]-<48>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식은 경험과 실험 혹은 관찰로 이루어진 객관적인 지식 또한 아름다움, 사랑, 행복 같은 순수한 개인의 감정과 통찰만에 의해서 생기는 주관적 지식이 있다.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지식의 대부분은 이 두 극단적인 객관과 주관 사이에 있는 것들이다.

객관적 지식은 자연현상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는 자연과학적 지식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우리의 생활을 돕는 유용하고 실용적인 지식을 말하며 우리의 감성과 정서에 호소하는 예술적 지식은 대부분 주관적 지식의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라틴어로  주관(Subjectum)은 ‘아래에 있는 것’, 객관적(Objectum)은 ‘건너편에 던져진’이란 뜻으로 풀이되고 있다. 어원적인 풀이를 보아도 주관이 객관보다 우위에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데카르트 같은 철학자는 주관과 객관을 대상화시켜 그 사이에 넘지 못할 장벽을 만들고 주관에 더 큰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고 객관을 동질화시킴으로써 주관과 객관이 영원히 따로따로 놀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현대 철학에서는 주관은 객관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주관과 객관의 분리는 모순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주관과 객관의 구분을 명확하게 설정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한다. 주관은 객관과 분리될 수 없는 관계적 개념으로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실체라는 것이다.


문명의 초기에는 대부분의 지식은 주관적 지식이었다. 오늘날 문명 시대의 지식은 과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객관적 지식이 많아졌음을 당연한 일이다. 인류의 지식이 발달하면서 많은 지식들이 외연을 확대시키면서 서로 유기적인 지식으로 통합하려는 경향으로 가고 있음은 확실하다.

과학 이론에는 절대적인 지식의 결과는 있을 수 없다. 과학지식은 계속해서 증거들이 축적되고 새로운 이론들이 서로 얽히고 첨가되면서 유동성 있는 지식의 형태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과학 세계에서 새로운 지식이 발표되면 제일 먼저 ‘흥미로운’ 반응을 보이고, 그 다음 ‘그럴싸한 것’으로 여겨지고, 다음에 ‘설득력 있는’ 것으로 인정해 주고 그 후, 충분한 시간이 더 지나면 ‘명백한 사실’로 과학지식의 수식어가 변화된다. 물론 이러한 등급의 표현에 뚜렷한 객관적인 기준은 없다. 다만 보증 받을 만한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객관적 과학 지식을 논리적인 분석을 통해서만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만도 아니고, 또 철학적인 문제로만 해결될 사항도 아니다. 오로지 인간의 사고에 의해서 계속 탐구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는 경험적 문제일 뿐이다.


과학과 예술이 매우 유사하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이유는 창조행위에 있어서 매우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장인의 경지에 이른 모든 창조행위가 주는 아름다움이나 성취감이나, 쾌감에 있어서는, 과학 분야에서나 예술 분야에서나 똑같은 감흥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과학이든 예술이든 모두 동일한 창조행위를 통해서 얻어지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이 다른 사람들 보다는 논리적으로 생각한다는 일반적인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과학자들은 언제나 수학적 언어만으로 사고하지는 않는다. 과학적 방법으로 어떤 일을 수행하고자 하는 것은 주관적으로 느낀 어떤 사고를 과학적 틀 속에 집어넣는 작업을 말한다. 주관으로 깨달은 후에 논리적으로 전개시키는 두 단계의 과정을 거친다. 창조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느낀다’는 의미이다.

지금 끝없이 발전하고 있는 첨단과학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의 사고와 판단과 합리성이 최고조에 달해 있어야만 이 시대에 걸맞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겠지만, 오히려 그 정보의 증가 속도와 함께 유효한 정보의 수명이 짧아지면서 우리는 더 많은 혼란에 빠지고 선택의 가능성만큼 위험성도 높아져 특별한 선택의 기술이 곧 성공의 비결이 되어 버린 시대에 살게 됐다. 따라서 인간이기 때문에 범하기 쉬운 생각의 오류를 더욱 더 많이 하게 되는 모순을 낳게 된 것이다.


인간이면 누구나 범할 수 있는 대표적인 생각의 오류가 몇 가지 있다. 인간들은 객관적인 통계자료보다 일회적인 경험담 같은 정보를 더 좋아한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통계학자가 아니라 이야기꾼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우리의 삶에 즐거움을 주고 상상을 자극하여 감동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복잡한 세상에 조금이라도 가볍게, 편하게 살고 싶은 생존본능에 의해서 자기 생각에 들어맞는 자기 마음에 드는 정보만을 취하고 싶어 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생각의 오류를 범하는 것은 진화과정과 욕망, 생각을 단순화 시켜야 한다는 필요성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이다. 사람들이 불충분하거나 부적절한 증거를 가지고 너무 쉽게 믿어버리는 경향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향상시키는 ‘비판적인 접근방법’을 가지는 습관이 필요하다.

사고는 훈련을 필요로 한다. 사고하는 방법이나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은 배우거나 훈련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된 믿음이다. 배우거나 훈련 한 번 한 적이 없는 훌륭한 피아니스트나 야구선수는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이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속에서 살아가면서 중요한 선택의 기로를 만났을 때 막연한 주관적 환상과 소망에 의지해서 잘못된 판단을 내려 소득 없이 먼 길을 돌아야만 하는 어리석음을 보여서도 안되며 또한 객관적인 정보의 홍수 속에 중심 없이 이 정보, 저 정보를 찾아 헤매는 에너지 탕진은 더더욱 기피해야할 일이다.

자기 편한 대로만 생각하고 결정하는 사고의 함정에 빠져 매사에 공회전만을 일삼는 경우와 자기합리화의 습성으로 인해 선택과 결정의 기본 규칙을 무시하는 생각의 오류에 의해서 불행을 자초하는 일은 가능하면 줄이면 좋을 것이다. 자신을 생각과 항상 어떤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훈련과 타인이 보내주는 말과 정보들을 통계학적인 재료를 바탕으로 냉철하게 분석해 보는 노력을 항상 해야만 할 것이다.







                                                                                  

  글: 최상묵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덴틴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