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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다재 다능(多才多能)한 화가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117>

 

   사전에는 임화(臨畫)를 “화집(畫集) 따위의 그림을 본 떠 그려 배우는 일, 또는 그 그림”이라고 정의한다.  왕초보 중학생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첫걸음이었는데, 어린 마음에도 남의 것을 베끼는 도둑질 같아서 맘이 편하지 않았다.  눈으로 읽고 뇌가 해석한 영상과 감흥을 붓을 통하여 재현하는 ‘수법’은 배우겠지만, 데쌩과 구도와 창의(素描·構圖·創意)력을 발달시키는 데에는 역기능을 한다.  1990년대에 디트로이트의 한 아울렛에서 골프구두를 샀다.  같은 풋 조이 제품이 $40와 $120 의 두 가지였는데, 어느 비오는 날, 싼 것을 고른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빗물이 멋대로 드나들어 양말을 적신 구두는, ‘Made in Taiwan’ 하청업체 제품이었다.

 

   필자는 현대미술 팝 아트를 인정하기 싫다.  만화를 베낀 그림이나 조수를 동원한 대작이 미술품이라면, 예술로서의 미술은 존립 가치가 흔들린다.  하물며 오락·도박의 대명사 화투를 그려놓고 미술작품이라고 떼를 쓰는 주장은 용서할 수 없고, 조수에게 하청하여 대량생산한(Factory) 대작은 CG(컴퓨터 그래픽)보다 나을 것이 없으니, 그저 벽지(Wall Paper) 대용품 정도가 아닐까?  일상의 용품도 장인(匠人)이 만든 작품은 명품 부티크에, 메이커 기획 상품은 백화점에 걸렸다가, 시즌이 지나면 아울렛 행이다.  마케팅에 실패한 상품은 난전·노점상에서 저울에 달아 땡 처리로 해결한다.  명품 구두나 핸드백과 비교할 수 없는 그림에는, 자타가 인정하는 천문학적인 고가의 ‘명작’이 존재한다.  보통사람은 미술관이나 화집으로 감상할 뿐이지만, 대기업이나 부호들에게는 투자 대상이며, 뇌물과 비자금 세탁용으로도 인기라고 한다.  작은 비용으로 아직 인정받지 못한 작가의 작품을 사서 감상하는 즐거움이야말로, 장기적으로 예술가를 후원하고 투자가치도 높은 일석삼조의 행복이다.

 단, 최소한 프로가 되려는 1 만 시간의 인고와 노력이 엿보이는 작품이라야 한다.

 실제로 침팬지나 코끼리를 동원한 팝 아티스트가 있다고 하여, 문자 그대로 개나 소나 화가를 자칭하고, 대부분 제3자에게 그리도록 맡기면서“그래도 아이디어는 내 것”이라고 강변한다면, 문자 그대로 “A penny for your thoughts!”다.  발명·발견·디자인 같은 기술 분야가 아닌 창작·예술의 고급 아이디어라면, 과연 하청 준 제3자와 영(靈)적 수준의 소통이 가능했을까?  만약 가능했더라도, 공동작품 또는 “실제로 그린 사람의 단독작품”으로 봐야한다.  예술가에게 영감을 준 멘토나 뮤즈를 화가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또 한 가지, 개인전을 여는 것은 제멋이지만, “싸구려 상상화인 화투”를 다시 베껴놓고 작품이라고 우기는 건 곤란하다.

 

   호당 십만 원이든 1억이든 그림을 사는 것은 성인의 자유다.  어렵게 결정해서 샀어도, 투자에 대한 이익이 발생했든 그림에 싫증이 났든 아니면 급전이 필요해서든 간에, 그림을 되파는 것 또한 자유다.  그러나 작가로부터 직접 구매한 그림을 현금으로 물러달라는 요구는 곤란하다.  작가를 두 번 죽인다.  적어도 작가가 사기(詐欺)를 쳤는데 되사줄 의지마저 없다면 문제지만...  조영남씨의 경우 전업 화가가 아니라는 사실은 세상이 다 알고, 사기 여부는 법이 심판할 일이나, 그림을 되사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힌 이상 별 문제는 없을 것 같다.  비슷한 수준끼리 만나 ‘우정’을 주고받았을 뿐 아닌가. 

 다만 장수·고령화시대를 맞아 앞으로 문화와 예술의 비중은 높아지고, 늦깎이 등단이 늘어갈 시점에서, 여생을 즐겁게 살려는 다재다능한 여기(餘技)와, 프로의 세계를 분명하게 구분해야 한다.  차이점은 단 하나, 투철한 장인정신이다.  연습에 소홀하고 일은 남에게 맡기면서, 호당 가격 얼마라고 자랑하며 프로행세를 하는 일은, 가난한 프로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종의 속임수다.

 

 

 

 

글: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