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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의사라면 金冠 義齒 이외 口顎炎 진료도 봐야..'

[朝鮮齒界로 읽는 해방일기 6] 李生 · 박용덕의 기고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아 조선의 치과계는 환희 속에서 당면 문제에 대응하느라 분주했습니다. 치과계 최초의 종합지로 1946년 5월 1일에 발간된 『朝鮮齒界』 창간호에는 당시 치과계 구성원들이 어떤 생각을 하였고 무엇을 위해 노력했는지 생생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 내용을 연재하면서 70년 전 선배들과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당시의 맞춤법이 지금과 적잖이 다르지만 원문 그대로 두었습니다.  <정리: 조영수>

 

 

시골 齒科醫 한 사람의 생각

현대의 치과의사는 金冠 義齒의 治術 이외에 口顎炎 질환의 진료의무가 있다. 방금의 환자는 齒性 질환의 全部를, 전부의 치료법을 치과의사에게 切望하고 있다.

頰部가 腫脹되었다, 人中부가 종창되었다. 어서어서 외과의사에게 가시오, 소생은 금관 의치가 전문입니다. 이래서는 환자는 만족치 않을 것이다. 문명은 개발되어 치과는 의학의 分科이며 안과이니 이비과이니 산부인과 등과 비하여 대등의 인식을 갖게 되는 現時에 회피 타령 말고 뜻한 바보담 그 報酬 적음의 口顎炎 환자는 날로 우리 眼前에 나타날 것이외다. 금관 의치 제작에 兩手를 더럽히며 분주한 우리 치과전문의인 이상 萬難을 忍耐코 以上의 질환을 치료하여 환자에 만족을 주어야 할 의무를 感得하는 바 올시다. 그 어찌 치과진료의 실제의 기능과 학식이 미숙한 보통의에 齒性 환자의 진료를, 아니 아니 그 생명을 轉科할 수 있겠나.

然이나 내외과 기타의 과에 있어 진료상 필요를 통감할 바에야 齒性질환 치료의 一助 및 參考로 공동진료를 요구할 필요는 있다. 헛되이 조급한 轉科는 치과의사의 羞恥일 것이다. 識見 溫厚한 보통의는 吾人의 식견 기량에 깊은 이해가 있을 것이라 밋는다. 미듬으로써 吾人은 欣快히 口顎炎 환자의 치료를 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진료에 당해서의 吾人의 고뇌는 질환의 치료까지엔 전신 증상 악화의 위기도 있고 왕진의 필요도 생기고 입원이면 하루 이틀의 불면의 밤을 홀로 안저 세움도 있다. 이런 때마다 학교 시대의 노-도와 先賢의 저서를 읽게 됩니다. 그래서 그 치아 질환의 부산물이 이곳저곳 새기고 놀래기도 하고 가슴을 조리며 밤중 3시, 4시도 지내고 하며 염증의 정복에 여러 가지의 手技, 투약, 비장의 주사약도 탕진하며 때로는 체표 주사의 필요를 늣기매 감폴, 링겔氏 液 구로칼, 도리빠후타민, 에루스진 등등을 경험적으로 아니될 바 卽 靜注, 肉內注, 혹은 0傷까지 이르게 합디다. 아모리 걱정없이 이러한 手技를 행하고는 오인은 유쾌하기 짝이 업다. 걱정이란 人命의 걱정이 아니라 手技 방법에 世人의 耳目, 보통의의 색안경이다. 그러나 自身平然이엿다.
그러나 幸인지 불행인지 치과의사의 八字는 문명의 今日 일부 사람의 오해를 받고 왔다. 그 실례는 일정시대에 몃몃 곳에서 이러난 문제가 잇지 않은가. 우리는 수머 다니는 俗談에 <돌파리 의사>가 아니다. 일정시대나 오날이나 우리의 齒性 모-든 치료에 아모런 제한이 없을 것이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시대를 생각하고 缺損部에 인공치아 보철작업만이 齒科醫라면 별문제이나 오날에야 명확하고 당당히 치과의술의 발전을 위해 내 몸을 바치련다.

우리는 이빨쟁이며 이만 해박는 사람이 아니다. 일정시대의 치과의사법 제정시대를 이즈자!!! 의학은 日進月步 한시도 쉬지 안는다. 발치 후에 발열이 있건 腫脹이 있건 골막, 골수염이 오든 모른다는 그 시대는 아니다. 발치 하나에도 렌토겐이다, 血壓이다, 動脈硬變便症증이다, 뇨검사다, 그 외에 치과외과 수술에야 혈액침강 속도의 측정, 혈액의 性狀, 檢徵, 조직 시험, 내외과의 검사와 달음없이 필요에 의해서는 하지 안나!!! 그리고 수술전후 전신의 상태에 따라 극독약의 內服, 피하정맥주사도 필요할 것이어다. 이러한 것인들 현대의 치과의도 연구에 노력해 왓다면 아모런 두려움도 없이 확실히 치료해 나가며 위험이 없을 것이다.

여기에 치과의사의 권위가 잇고 또는 오인의 걸을 길일 것이외다. 消極은 暴力과 동등한 죄악이다. 환자를 끌어내여 광고말고 기공실의 거지 머리 갖지 말고 엇지하면 많이 바들가 라는 마음 버리고 치과의사로서의 양심적인 技能을 다 하여 자각을 가지고 환자를 접대하자. 우리는 覇道, 覇權을 획득하려 하려 말고 天賦의 영역내의 전능력을 다함이 새나라 건설의 도움이 아닐가.  <李 生  淸州>


조선치계 창간을 祝함

금번 우리 조선치과계를 위하야 학술잡지를 발행하신다니 매우 반갑고도 고마운 일입니다. 과거에 있어서는 아시는 바와 같이 일본 침략주의의 구속을 바다 나무나 좁은 시야에서만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해방된 오날에 있어서는 시야도 넓어지고 책임도 중하게 되었습니다. 在來 일본식 편견을 깨끗이 청산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할 일은 참으로 크고 많습니다. 또 배워야 할 것도 많습니다. 외국의 진보 발달한 학술적, 기술적, 연구를 하로밧비 흡수하지 안흐면 안될 것임니다.

이 때를 마저 치과잡지를 발행케 된 것은 적절하고도 또 우리가 온갖 바라든 바임니다. 압흐로 이 잡지를 통해서 우리가 배워질 것이 많을 줄 밋습니다. 同人 여러분께서 말슴하신 바와 같이 編輯에 있어서는 치과인의 公器로 치과의료의 발달 생상의 추진기관이 되어 주시기를 懇切히 바라는 바임니다.

더구나 우리들과 같이 각 의과 계통에 職을 가진 사람 누구나 갈망하든 것이라고 밋습니다. 우리는 각과의 의사들과 밀접한 접촉을 하고 잇느니만큼 책임도 중하고 또 실력도 있어야만 할 것임니다. 우리의 실력 如何는 일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치과의 전체에 관련되는 까닭임니다.

이런 점으로 보아도 <조선치계>의 창간은 의의가 깁고 우리들에 벗이 되는 동시에 치과계의 광채를 띄울 것임니다. 건설 途上에 잇는 우리 조선을 위하야 또 多幸할 치과계를 위하야 희생과 노력을 악기지 말고 싸워주시기 바람니다.   <세브란스의전 치과학교실 교수 박용덕>


 

                                              정리 : 조영수<전 대한치과의사학회 회장>
 

 

'朝鮮齒界'는 해방된 조국의 첫 치과전문지로 1946년 5월에 탄생했습니다. 발행인은 황영기, 편집장은 최효봉 그리고 발행처는 조선치계사로 되어 있습니다. 표지까지 110쪽 정도의 분량이지만, 이 안에는 해방을 맞은 한국 치과계의 박동이 느껴지는 글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각 지역치과의사회 소식은 물론 치과의무행정에 대한 소감 그리고 당시의 임상과 치과기재상공에 관한 이야기까지.. 덴틴은 광복 70년을 맞아 이 소중한 사료들을 연재의 형식으로 독자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치과계 각 분야가 70연 전의 초심을 회복하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연재를 기획하고 직접 정리까지 맡아주신 조영수 선생께 감사의 인사 전합니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