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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독후감] 환자의.., 마음으로부터의 치유

놀랍도록 과학적인 '환자의 마음'을 읽고

  몸이 아파 참을 수 없어 병원에 걸어가고 있다보면, 몸이 아픈 것이 걱정되기보다 어떻게 아프다고 말해야 선생님이 내 아픔을 알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항상 들었었다. 그렇게 ‘어디어디가 아픈지 선생님께 까먹지 말고 말해야지’하며 병원에 가게 되는데도, 항상 의사선생님 앞에서는 수동적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던 기억이 난다.

청진기가 내 몸에 갓 닿자마자 느껴치는 차가움은 기분좋지 않게 다가왔지만, 이내 다가오는 선생님의 따듯한 촉진과 함께 여기가 아픈 것인지, 어쩌다가 이렇게 아프게 되었는지 물어보는 목소리를 듣고 있자면 안도감과 함께 이미 나은듯한 착각에 들기도 하였었다. 그리고 어느샌가 청진기가 다른 곳의 소리를 듣기 위해 이동하게 되면서 느끼는 것은 선생님에 대한 신뢰와 함께 내 체온만큼 달구어진 청진기의 따스함이었다. 

 『환자의 마음』은 우리가 가볍게 지나칠수도 있었던 이러한 미묘함으로부터 시작한다. 처음부터 인문학적으로 이런 환자와 의사 사이의 미묘한 상황을 접근하기 보다, 기초로부터 다시 시작하여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원리가 무엇인지 과학적으로 직시하고 설명을 하는 책이었다. 그리고 다른 의료인문학 책들과는 달리 이러한 과학적 단상을 기반으로 하여 다시 인문사회학적인 환자-의사간 관계를 돌아보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과학자의 관점에서 어떻게 환자의 마음, 즉 인간 본연의 감성을 서술할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면서 몸이 아프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들었다. 물론 학교에서 생리학 수업시간때 배운 것처럼 몸이 아프다는 것은 통각수용기와 통각전달경로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입원했을 때 겪었던 일들에 견주어 보았을 때, 병상에 누워 있노라면 진통제 때문에 몸은 전혀 아프지 않더라도 내는 무언가 다른 차원의 아픔이란 것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특히 내 팔에 꽂여있었던 정맥관과 드레싱 때문에 씻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어딘가 산책을 나가려면 수액들 행거에 걸고 밀면서 가야 했던 그 상황이 알수 없는 아픔으로 다가왔었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질병 자체는 예측가능성의 상징이며, 질병이란 통제를 상실한 채로 살아가는 것을 배우는 것이라는 대목이 크게 다가왔다. 질병이 정말 슬픈 것은 그것이 단순한 고통이 아닌 한 사람의 자유로움을 뺏어갈 수 있기 때문인 것일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환자의 마음』의 대답은 놀랍게도 과학적이었다. 환자는 어떤 병리생리학적 상황에 놓였기 때문에 아픈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병리생리학적 상황의 해소만이 고통을 줄여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환자를 염려하고 걱정한다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기전이 있는 하나의 치료 방법이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었다.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오히려 이러한 과학적 접근이야말로 환자를 인문학적으로 대하여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었다. 과학으로부터 시작하여 마음으로 끝을 내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학업을 해오며 우리는 많은 과학적 사고 능력을 배울 수 있었다. 실제로 많은 치료법을 배웠었고 열심히 공부한 학생이라면 나도 이제는 왠만한 환자의 고통을 줄여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많이 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병원에 와 보니 선생님들과 교수님의 진료는 환자의 고통 원인을 제거하는 단순한 문제해결이 아니라 실제로 환자를 대하고 마음으로부터의 치유도 함께 해가는 더욱 높은 차원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내가 의사선생님의 따스한 청진기를 느끼고 마음이 차분해졌었던 그 순간과 같은 환자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책에서 과학으로 시작하여 마음으로 끝을 내리는 것처럼, 우리도 치의학으로 시작하여 마음으로 끝을 내려야 한다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이전에는 병을 치료하는 전문적인 과정에 좀 더 중점을 두고 있었더라면 이제는 환자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 그 환자의 신체의 치유뿐만이 아니라 환자의 정신 사회적 건강 그리고 더 나아가 그 환자의 의견이 존중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이 책은 이런 흐름에 대한 시작으로서, 환자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어야 하는가에 대해 추파를 던진다. 잠시나마 설익은 지식에 빠져 차트만 바라보던 나로부터 빠져나와 내 자신을 내려볼 수 있는 그런 책이였다.

 

글: 오세웅 <부산대 치의학전문대학원 3학년>

 

이 원고는 부산대 치전원 정태성 교수가 3학년 소아치과학II 강의에서 과제물로 받은 독후감 중 표절검사와 전문가 심사를 거쳐 뽑은 우수독후감 입니다. 좋은 작품을 추천해주신 정태성 교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