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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그 단맛 같은...

노래하는 치과의사들: 자일리톨밴드<1>

미국 사람들이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따라 부르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가사의 의미를 모르면서도 그들은 표정으로 몸짓으로 충분히 흥겨움을 전달하고 있었다, 마치 우리가 팝송을 따라 부를 때처럼.

음악은 그 자체로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유행가를 들으며 고된 노동을 견디는 사람들에게서 라디오을 뺏는다고 가정 해보라. 아마 그들의 얼굴에서 다시 미소를 찾기는 어려워질 것이다.

치과의사 그룹 자이리톨밴드는 매년 열린치과봉사회와 함께 비전트레이닝센터에서 공연을 한다. 노숙자들과 알콜중독자들이 대부분인 그곳에서도 음악은 늘 환영받는다. 식당의 탁자를 한쪽으로 치우고 무대를 설치하면 100석 남짓의 공연장이 되는데, 이들은 처음엔 어색한 호응을 지어 보이다가도 열기가 오르면 우르르 몰려나와 떼춤도 마다않는다. 웃을 일이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사람을 즐겁게 만드는 힘이 음악엔 있다.

듣는 입장에선 그렇다 치고, 그럼 직접 음악을 하는 입장은 어떨까? 자이리톨에게 물어봐야겠다, 음악을 왜 하느냐고. 

하지만 “음악을 왜 하느냐?”는 질문은 대개의 경우 우문이기가 쉽다. 음악을 하는 데엔 특별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음악을 하고 싶고, 또 기왕이면 잘 하고 싶지만 못해서 못하는 것일 뿐, 기타를 연주하는 사람에게 기타를 왜 치느냐고 묻는 건 마치 오너드라이버에게 운전을 왜 하느냐고 묻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자이리톨밴드의 맴버들도 다들 그렇게 음악을 영위하는 중이다. 공연이 아니더라도 이들은 매주 월요일이면 홍대 앞 연습실에서 2시간쯤 땀 흘려 손과 입을 맞춘다. 그런 리듬에 익숙해지다 보니 멤버들은 이제 그것이 없으면 ‘뭔가 몹시 허전할 것 같다’는 느낌 정도는 깨닫게 됐다.

그 이상은 아직 잘 모른다. 이미 중독의 단계인 이들에겐 음악이 곁에서 온전히 사라져봐야 그 헛헛한 상실감을 민낯 그대로 만날 수 있을 테지만, 기세호 원장이 미국으로 공부를 떠난, 그 길었던 1년을 제외하곤 아직 월요일 연습을 거른 적이 없다.  

 

 

 

‘매주 월요일 저녁시간은 지웠다’

 

이날도 저녁 8시가 되어갈 무렵, 홍대입구역 5번 출구 부근 한 음식점 앞으로 자이리톨 맴버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익숙하게 문을 열고 들어선 기세호 원장이 손님을 배려해서 인 듯 닭도리탕을 주문했다. 신용준 원장과 나현우 원장은 옆에서 조용히 웃고 있었다.

좌정을 하고, 작은 탁자를 끼고 마주앉은 신 원장에게 물었다. ‘연습과 다른 일정이 겹치면 어떻게 하느냐’고... 기대대로 해결책은 아주 간단했다. 월요일 저녁은 아예 없는 셈 친단다. 그러니 없는 저녁에 무슨 일이 생길 리 만무다. 그래도 연습이 귀찮을 때는 있지 않을까?

“아니에요? 연습실에 오면 스트레스도 풀고, 다른 생각을 안 하게 돼요. 한마디로 시원해지는 거죠. 그게 왜 귀찮겠어요?”

기타를 맡고 있는 나현우 원장은 지난해 5월경 팀에 합류했다. 나머지 맴버들이 창단 때부터 10년 이상 호흡을 맞춰온데 비하면 말 그대로 신참이다. 단국치대 그룹사운드 출신인 그를 추천한 이는 기세호 원장이다. 덕분에 음악을 떠나 살면서 뭔가 허전했던 마음 한쪽을 그는 요즘 꽉꽉 눌러 채우는 중이다.

자이리톨의 입장에서도 나 원장의 합류는 아주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특히 실전에서의 그의 존재는 자이리톨의 음악을 더욱 감칠맛 나는 그것으로 만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그동안 맴버 중 유독 기타만 몇 차례 교체가 있었는데, 기타가 자주 바뀌는 이유는 대개의 경우 음악적 성향이 맞지 않는 탓이란다. 자이리톨은 메탈그룹이 아니지만, 기타는 아무래도 그 쪽 성향이 강하다 보니 맞춰가느라 애쓰다 결국 갈라서는 경우가 되고 만다.

나 원장은 그러나 일단은 잘 융합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9월 홍대 앞 상상마당에서 열린 자이리톨 정기공연에서 이미 찰떡 팀웍을 선보이며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잘 익은 닭도리탕이 식탁 위로 배달될 즈음 키보드 이승택 원장이 도착했다. 그는 나 원장과 마찬가지로 인천 계양구에 치과를 두고 있으므로 홍대 앞까지 나오려면 계양역에서 인천공항선을 타고 홍대역까지 25분여를 달려야 한다.

이 원장은 자이리톨의 단장 역할을 겸하지만, 자신의 의견을 소리 높여 내세운 적이 한 번도 없을 것처럼 늘 조용하기만 하다. 자이리톨이 잡음 없이 14년째 팀웍을 유지해온 숨은 비결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이제 다를 모였으니 궁금한 것들을 하나씩 확인해야겠다. 좁은 식당 안은 이미 손님들로 가득 차 바로 앞에서도 목소리를 높여야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소란스러웠다.  

 

 

언제나 가족들이 든든한 후원자

 

-팀을 운영하려면 돈도 많이 들 텐데요?

“나눠서 N분의 1씩 내요. 공연을 않으면 사실 돈은 별로 안 듭니다. 연습실 사용료 정도인데, 그래봤자 한 달에 20만 원 정도씩만 부담하면 충분하거든요. 공연요? 공연이 있는 경우는 얘기가 다르죠. 상상마당 같은 경우 임대료만 200만 원 가량에 뒤풀이까지 준비하려면 꽤 부담이 돼요. 이 역시 나눠서 내고, 후원금에서 보태고 그러는 수밖에 없잖아요? 하하”

-주위 분들에게 티켓을 판매하면 어떨까요?

“티켓을 팔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좋기야 하겠지만, 아마추어 밴드가 입장료를 받는다고 하면 다들 웃을 걸요?” 

-일 년에 공연은 몇 차례나 있죠?

“14년간 계속해온 열린치과봉사회 공연이 있고요. 서울시치과의사회가 후원하는 포밴드 공연, 그리고 정기 콘서트가 주 무댑니다. 전에는 치과의사 모임 같은 데서도 자주 했는데, 요즘은 많이 줄였어요. 장소라든가 분위기라든가 밴드공연에는 맞지 않는 경우도 있었거든요.”

-신 원장님은 언제부터 자신의 노래가 들을 만 하다고 생각하게 됐나요?

“하하, 글쎄요. 통기타에 맞춰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긴 했지만, 잘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치대 가요제 같은 델 나가기도 했었는데 말이죠. 물론 그땐 내가 밴드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었죠.”

-본인들은 그렇다치고 가족들은 어떤가요. 남편이 밴드를 하는 걸 좋아들 하나요?

“아 그럼요. 다들 상당히 좋아했죠. 지금도 든든한 후원자고요. 신 원장은 공연 때마다 이것저것 먹을 걸 싸오는데, 그걸 꾸려 보내는 게 어디 보통 정성이겠어요? 아이들한테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봐요. 기세호 원장 아들은 작곡을 전공하는데, 아무래도 아빠의 영향이지 싶어요.”

 

 

얘기를 하느라 식은 닭도리탕을 한 번 더 데워내야 했다. 식사 후에는 이제 연습실로 들어가 2시간동안 손을 맞춘다. 그러고 나면 11시, 장비를 챙겨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도 12시다.

할 일 많은 치과의사 가장들이 매 월요일마다 이렇게 일탈을 실행하는데도 식구들은 이들에게 적극적인 지지를 보낸다.

아시겠지만 그 이유는 바로 건전한 탐닉에 있다. 누구든 좋아하는 세계에 노력으로 빠져드는 모습은 그리 나쁘지 않아 보인다. 더구나 이들은 가장 대중적인 팝 아티스트들이다. 일주일에 하루가 아니라 이틀이라 한들 굳이 말려야 할 이유는 없다. 가장으로서도 너무나 성실한 이들이라면 더더욱.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