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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격자 손아귀에서 망친 행복한 식생활

[이승훈의 재미있는 입속여행]- <16>

 

 

<치과의사의 이야기 1> 

진료 직전의 평온함을 깨는 전화벨 소리가 울리더니 바깥이 시끄러워진다.

위생사가 주저하는 표정으로 들고 온 무선 전화기. "A 선생님이죠? 저번에 했던 틀니가 잘 안 맞으니까 와서 좀 봐주시고요. 이번에는 내 친구도 한다니까 틀니 하나 더 준비해서 이리로 좀 와주세요."

아닌 밤중에 홍두께 라고 이게 무슨 소리? 그 많은 장비를 다 들고갈 수 없는 관계로 치과의사가 왕진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데.

거기에 내가 전에 찾아가서 틀니를 해 줬다고?

내 병원하고 봉사 진료소 외에는 진료한 기억이 없는데 나 말고 A가 또 있나?

"아 왜 전에 00 빌딩 지하에서 친구들 쫙 모아서 틀니 해줬자나요. 갑자기 다른 소리세요?"

이제야 감 잡았다. 어떤 간 큰 돌팔이가 내 명함을 구해다가 나를 사칭하고 다녔구만.

그렇다고 환자들에게 명함 안 드릴 수도 없고 병원 닫고 직접 단속을 나갈 수도 없으니 그저 황당하고 분통터지는 일이다.

 

<치과의사의 이야기 2> 

주말을 이용해 12일로 봉사진료를 가는 길. 차 안의 봉사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오늘은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처음 진료를 갔을 때의 놀라움은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 주차를 하기가 무섭게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던 환자들에게 둘러쌓이는 모습은 흡사 유명 연예인과 극성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시골이라고 해도 읍내인데다 근처에 여러 개의 치과와 치과 보건소까지 있었기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것을 처음에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거기 모인 대부분의 환자가 치과 돌팔이가 만든 틀니를 수리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알기 전 까지는.

 

비보험 진료가 많은 치과의 특성 상 무자격자에 의한 진료는 알게 모르게 이뤄지고 있는듯 하다상대적으로 의료 환경이 좋지 않은 시골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서울 한 복판에서도 간 큰 무자격자는 치과의사를 사칭하기도 한다. 치과의사들 돈만 많이 받지 자신들에게 하면 치과와 거의 차이가 없고 가격도 1/3 내외라고 환자를 유혹하는 무자격자들.

 

오늘은 무자격자에게 보철을 해 넣으면 안되는 이유에 관해 이야기 하려고 한다.

 

우선은 위생상의 문제다.

치과 진료는 간단한 진료라 하더라도 출혈이 있는 것이 대부분이고 특히 마취하는 주사기 등은 1회용을 사용해야한다. 과연 무자격자들이 그런 위생 수칙을 잘 지키고 있는지 더욱이 진료실이 아닌 곳에서 얼마나 소독 시설을 잘 갖출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이전에 TV 프로그램에서 점 빼는 시술을 하는 무자격자가 '의사랑 경쟁해도 자신 있다.'고 인터뷰 한 적이 있다. 실제로 그 사람이 의사 보다 점 빼는 술식 자체는 더 잘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과정 중에 혹시 있을지 모를 부작용이나 감염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지식을 가지고 대비책이 있을지 의문이다. 의사로써 갖춰야할 필수적인 요건에는 얼마나 치료를 잘 하느냐도 있겠지만 부작용이나 감염 같은 돌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지식과 능력을 갖추고 있느냐 역시 포함된다.

 

하나 밖에 없는 자신의 몸을 경제적인 이유로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은 아닌지 신중하게 생각해 보자.

 

다음은 보철물의 품질의 문제이다.

치과의사라고해서 다 손기술이 뛰어난 것은 아니고 몇몇 무자격자들은 치과의사 이상으로 손기술이 좋은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기구는 치과의사가 사용하는 것과 비교하면 열악하기 그지없다.

 

"최고의 화가나 최고의 요리사는 아무나 될 수 없지만 최고의 치과의사는 노력만 하면 누구나 가능합니다. 치과의사를 도와 줄 훌륭한 기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Shimon Friedman이 했던 유명한 이야기 이다.

아무리 손재주가 좋은 사람이라고 열악한 기구를 쓰는 이상 보철물의 품질은 필연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불량한 보철물을 계속 끼고 있으면 남아 있는 치아가 망가지는 것은 물론 자칫하면 구강암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a/s에 문제가 있다

대부분의 무자격자들은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보따리를 메고 돌아다닌다.

치과 보철물은 만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차후 관리 역시 매우 중요한 법인데 사용 중 수리를 받아야할 상황이 되면 이미 제작자는 행방이 묘연하다.

근처 치과를 찾아가도 수리를 해줄리 만무하다. 무자격자가 만든 보철물은 치과의사가 만든 것과 설계가 다르기 때문에 손대기 어려운 점도 있지만 자신이 만든 보철물이 아니면 수리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고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 애초에 설계한 사람이 잘못한 것인지 고치던 사람이 잘못한 것인지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원래 쓸만했는데 저 사람이 잘못 만져서 망가졌으니까 다시 만들라고 억지 쓰는 사람이 생기면 난처하기 때문이다. 주말 봉사 진료실에 환자가 몰리는 이유는 어디서도 수리해 주지 않는 보철물의 수리를 부탁하기 위해서이다. 어차피 그 당시에만 쓸 수 있게 해주고 나서 그 동네 뜨면 그만이라는 사고방식 역시 무자격 보철물의 폐해를 증가시키는 큰 원인이다.

 

 사실 위에 있는 4가지 이유가 전부라면 '사정이 어려운 분들이 그렇게라도 식사하시면 없는 것 보다는 낫겠지.'라고 넘어가 줄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이 밖에도 무자격 보철물은 남아있는 치아 전부를 빠른 시간 안에 망가뜨리는 역할을 하는 가장 큰 폐해도 있다.

 

 

 

 치과에 관련된 일에 종사하거나 아니면 건축 토목에 대해 상식이 있는 독자라면 위의 보철물이 얼마나 황당한 구조인지 잘 알 것이다해당 환자는 1년 전 기자가 직접 진단한 환자로 왼쪽 위의 어금니 2개가 없어서 꼈다 뺐다하는 틀니를 하거나 임플란트를 2개 식립 하라고 권했다그런데 환자 생각에 임플란트는 돈도 돈이지만 수술 받기가 무섭고 틀니는 쓰기가 번거로울 것 같아서 망설이던 차에 주변 친구로 부터 '잘 하는 곳'을 소개 받았다고 한다.

 

'잘하는 사람'이 말하기를 자기가 하면 수술도 안 하고 꼈다 뺐다 하는 번거로움도 없다고 하기에 거기서 했더니 1년도 안 가서 잇몸이 붓고 아팠다고 한다.

 

임플란트가 아닌 크라운 엔드브릿지라고 불려지는 치과의 보철 방식은 건축 공학과 관련이 깊다양쪽의 지대치를 깎아서 기둥으로 삼고 다리를 연결하는 방식인데 위의 보철물을 보면 기둥 2개가 다 왼편으로 쏠려 있고 다리 한 쪽은 공중에 떠 있다.

 

 cantiliver bridge라고 불려지는 방식인데 당연히 역학적으로 외력에 불리한 구조이기 때문에 무척 제한적으로만 쓰여야 한다.

 

 위의 구조물 같이 다리 부분에 해당하는 길이 보다 뒤에 떠 있는 구조가 훨씬 더 긴 것은 애초에 설계 자체가 잘못되었다더욱이 뒤쪽으로 갈 수록 강한 힘을 받는 구강내 환경을 감안하면 소구치 2(A,B)개의 힘으로 대구치 2(C,D)를 지탱하라는 것은 무리다.

 

그럼 저런 구조로 장착된 보철물은 어떻게 될까?

 

우선 뒤쪽에서 아래로 향하는 힘을 받기 때문에 위로 향하는 힘을 받는 제일 앞의 소구치(A)의 접착제가 떨어져 버린다그러면 이제 치아와 보철물을 지탱하는 것은 두번째 소구치(B) 하나.

 

결국 위의 구조물은 B를 지지점으로 하는 1종 지렛대의 운동(시소 운동)을 하게 된다.

시소의 받침 점이야 베어링 구조로 힘을 비켜가지만 단단히 묶여 있는 B 치아는 씹을 때 마다 양쪽으로 기울어지는 힘을 받게 된다.

 

 

 

이 힘의 작용 방향은 발치를 할때 힘을 주는 방식과 매우 흡사하다.

 장기간에 걸쳐 계속해서 발치를 진행한 것과 같은 결과를 얻은 것이다.

그럼 A? 본드가 떨어지고 계속해서 위 아래로 움직이면서 찌걱 찌걱 거리는 느낌을 받는 A는 음식물이 들어가기는 쉽고 나오기는 어려운 구조이다.

조금씩조금씩 끼어들어간 음식물은 세균이 번식하기 좋은 최상의 조건을 제공하여 실제 해당 보철물을 제거 했을 때 안쪽에 있는 치아는 완전히 썩어버려서 흔적도 찾기 어려웠다.

해당 환자는 결국 A,B 모두 발치를 시행하고 4개의 임플란트를 식립 했다.

임플란트 했으니까 됐다거나 어차피 틀니 할 건데 이 한 두개 더 뽑는 것이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를 하더라도 구강 내에 잔존하는 치아가 몇 개냐는 틀니 사용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한 개의 치아라도 남아있는 상황과 완전 무치악의 상황은 그야 말로 천국과 지옥만큼이나 큰 편안감의 차이를 환자에게 제공한다.

 

요즘 TV 광고 덕분에 임플란트가 정말로 제 3의 치아로 착각하고 너무 쉽게 자신의 치아를 포기하는 이도 있지만 아무리 뛰어난 치과의사가 시술 하셨다 하더라도 임플란트는 자연치의 성능이나 심미를 절대로 쫓아갈 수 없다.

 

결국 환자는 단지 귀가 얇아서 '잘하는 사람'을 찾은 탓으로 경제적으로는 그 가치를 환산할 수도 없는 신체 일부를 너무 허무하게 잃은 것이다.

거기에 더해 애초에 임플란트 2개비용이면 해결 될 것을 무자격 보철 비 + 임플란트 2개 추가라는 경제적인 손실까지 덤으로 따라왔다.

 

보철 치료는  치과의 꽃이라고 불려 질 정도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지식, 경험, 술식을 두루 갖춰야만 성공할 수 있는 매우 어려운 술식이다.

 

신체의 일부인 자연치도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탈이 나는데 인위적으로 더해진 보철물이 장기간 유지하면서 정상적으로 기능하도록 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구강 내는 최고 온도와 최저 온도의 차이가 100도 가까이 되고 온갖 전해질과 산, 염기가 번갈아 가면서 들락거리고 하루에도 수백차례 씩 엄청난 압력을 받아야하는 매우 불리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건강과 행복한 식생활을 위해 부디 무자격자의 언변에 넘어가는 일이 없어야겠다. 현재 서울시 치과의사회에서는 무자격자에 의한 폐해를 막기 위해 제보를 받고 있다. 080-282-2282(신고 포상금 20만원)

 

 

 

  

글: 이승훈

필자 이승훈은 단국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이수백치과 원장으로 근무 중이다.

대한치과의사문인회 회원으로 진료와 더불어

개성이 강한 작품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